현대엔지니어링이 대대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40여 년간 썼던 사명까지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혁의 방향이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중대재해와 관련한 문제 해결이 핵심 동기로 작용했다고 바라본다. 안전경영 시스템 전반이 개편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안전경영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거나 투자비를 줄인 건 아니다. 그러나 본사와 하청업체 합산 중대재해 건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안전경영 체계만으로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경영조직과 이사회 구조 재편, 투자 확대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부 혁신 계획 발표, 기존 안전 시스템 재점검 4일 현대엔지니어링에 따르면 현재 안전 관련 체계를 크게 개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 4월 말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개초한 타운홀미팅에서 내부 혁신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안전 점검 및 체계 관리 조직 확충, 안전투자예산 확대, 작업중지권 활성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변화에 나서는 배경으로 올 들어 발생한 산업재해가 꼽힌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주요 사고는 두 건이다. 2월 말 충남 천안에서 교량 구조물이 붕괴돼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3월에는 작업자 2명이 추락해 1명이 사망,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현행 안전경영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실
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안전 체계를 갖추고 있다. ISO 45001(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취득해 2023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에 인증을 받았다. 해당 표준은 업무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상, 질병 등 안전보건 리스크를 예방, 관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중심으로 안전보건 관련 조직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충남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업지원실장 등을 지낸 김정배 상무가 CSO로서 안전보건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김정배 CSO는 안전품질본부를 이끌고 있는데 해당 본부 산하에는 안전보건관리실과 품질혁신실이 있다. 해당 조직은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구축과 안전보건 문화의 내재화를 목표로 한다.
이밖에 현대엔지니어링은 안전보건협의체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안전보건협의체는 모든 현장에서 안전보건 목표와 이행 실태를 점검 및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 피드백을 통해 안전보건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에 영향을 미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공사금액이 120억원(토목 150억원) 이상인 현장을
대상으로 분기 별로 개최되는 위원회다. 사업장 내 여러 구성원이 참여해 안전보건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의결한다. 2023년에는 국내 98개 현장에서 총 558회 열렸다.
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는 가운데 관련 투자비도 크게 늘었다. 2021년까지만 해도 현대엔지니어링은 안전보건 분야에 449억원을 투입했지만 2023년 투자비는 1189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산업재해 다시 증가 기조, 이사회 존재감 확대될까 그러나 산업재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발생한 사고를 제외하더라도 현대엔지니어링의 산업재해는 오히려 증가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해마다 사망자가 2~3명가량 발생했다. 그나마도 2018년 5명이었다가 이듬해 소폭 감소한 것이다. 재해자 수도 2020년 50여명에서 2023년 190여명으로 증가했다. 사망 및 재해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사회는 해마다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을 대표이사로부터 보고받아 승인하고 있다. 이사회도 안전 관련 예산 및 투자, 조직, 인원 등에 관해 점검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는지 경영진을 감독할 책임이 있다.
다만 이런 책임은 이사회 전반에 부여되어 있고 안전 관련 사항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소위원회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안전 관련 안건도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2024년에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연 5회 이상 주요 안전보건 이슈를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하고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항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3년과 2024년 사업보고서에 공시된 이사회의 주요 의결사항에는 안전 및 보건 계획 승인의 건, 산업안전상생재단 기부금 출연의 건 등만 논의했다고 밝혔다.
향후 이사회가 재해율 등 안전보건 지표를 경영진의 성과 및 보상에 반영하는 기조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관에 경영진의 성과 체계나 보상 원칙에 관한 세부 조항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대신 보수위원회를 통해 등기이사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의 보수와 인센티브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보수위원회에서 중대재해 등 사고 발생, 재해율 등 안전보건 지표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주요 임원들의 평가 점수가 5점 감점되는 등 패널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본사와 현장 임원의 핵심성과지표(KPI)에는 안전보건 지표가 각각 5%, 10%씩 반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