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강하게 메시지를 던졌는데도 사고가 발생하잖아요. 인력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최근 만난 건설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의 말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이 반복적 산업재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며 규제를 예고했는데도 건설현장의 중대재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다.
건설사들의 절박함도 느껴진다. 현장에 안전 전문 인력 파견을 늘리며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CSO들도 직접 현장을 돌며 대대적인 안전점검에 나섰다. 그런데도 발생하는 중대재해는 마치 불가항력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중대재해는 정말 사람의 힘으로 줄이기 힘든 난제일까. 공교롭게도 통계는 조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시공능력평가 기준 10대 건설사 CSO의 직급과 사망사고 사이에는 일정한 경향성이 포착된다. 2023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무가 CSO를 맡은 건설사의 사망사고가 전무~부사장급 CSO를 둔 건설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CSO를 계속 상무급 임원에게 맡겼는데 2023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뒤를 이은 포스코이앤씨의 CSO는 사내이사이긴 하지만 권한이 비교적 적은 상무급 임원이다.
반면 그보다 직급이 높은 부사장급 임원에게 CSO를 맡긴 건설사는 사망자가 비교적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물산의 수치가 가장 낮았고 법무, 인사, 구매 등을 총괄하는 경영지원센터장을 CSO로 선임한
SK에코플랜트가 그 뒤를 이었다.
물론 CSO의 직급을 단순히 높인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고위급 임원이 CSO를 맡은 건설사도 중대재해를 완절히 근절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권한이 실린 자리에서 CSO가 활동할 때 안전경영이 작동할 최소한의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CSO로 하여금 예산과 인사 등 회사의 핵심 자원에 대한 접근권한이 강하고 독립적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보장할 때 안전경영 체계의 실
효성이 확보된다.
조직이 누구에게 어떤 권한을 쥐여주느냐는 결국 무엇을 중시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CSO를 형식적 직책으로 둘지, 실질적 안전경영 책임자로 삼을지는 기업이 안전을 어떤 눈높이로 보는지를 시사한다. 권한이 실려야 책임이 작동하고 책임이 작동해야 안전은 시스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