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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그룹에 팔리는 영풍제지, 이사회도 물갈이

집행임원제도 도입 1년만 폐지…적대적 M&A 방어·사업 재편 위한 의사결정 체계 일원화

허인혜 기자

2025-09-10 16:55:09

대양금속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던 KH그룹 인물들이 영풍제지의 신임 이사회 구성원 후보에 올랐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 지분 매각 공시를 통해 '매수인이 지정한 이사 선임'이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 조건과 정관, 이사회의 변화 등을 종합하면 KH그룹이 영풍제지의 매수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영풍제지는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한 지 1년 만에 폐지 안건을 정기 주주총회에 올렸다. 영풍제지의 주도권이 바뀐 만큼 의사결정 체계를 다시 이사회로 일원화해 경영권 방어 체계를 강화하고 사업 재편을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 목적도 대폭 늘린다.

영풍제지는 집행임원제를 폐지하며 대표이사를 재선임한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따른 안건들이 상정될 경우 초다수결의제를 집행하기로 했다. 퇴직 보상금에도 적대적 인수합병에 따른 해임일 경우 보상조건을 명시해 모든 변화가 경영권 수호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집행임원제도 1년여 만에 폐지

영풍제지는 이달 주주총회소집공고를 통해 부의안건을 보강해 공시했다. 8월 소집결의에서는 이사와 감사의 선임안 만이 있었지만 개정 공시에서는 정관을 변경하는 한편 이사 7인과 감사 1인을 신규선임하는 안이 포함됐다.

정관 변경의 배경은 집행임원제 폐지다. 정관상 '대표집행임원'에게 결정권을 준 임무를 모두 대표이사가 수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소집권자와 의장, 대표이사의 선임 등의 항목에서 대표집행임원을 대표이사로 교체했다.


집햄임원제도는 업무의 집행과 감시를 분리하는 이원화 체계다. 이사회에서 업무를 집행하는 '집행임원'을 선출하고 결의에 따라 업무 집행을 위임한다. 집행임원은 업무 집행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지낸다. 집행임원은 3개월에 1회 이상 업무의 집행 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영풍제지의 집행임원 제도는 도입 1년여 만에 폐지 안건이 상정됐다. 지난해 7월 영풍제지는 조상종 대표를 이영덕 대표집행임원으로 교체한 바 있다. 10월 임시 주총에서는 이사회의 제안으로 정관상 대표이사의 직무를 모두 대표집행임원 담당으로 변경하고 집행임원의 업무도 명시했다. 이사의 수도 3인 이상에서 3인 이상 7인 이하로 조정했다.

10월 공고문을 보면 영풍제지의 주주총회는 제이브이씨조합 주주제안 측과 영풍제지 측의 제안이 맞붙고 있다. 제이브이씨조합에서는 영풍제지의 이사회 구성원을 대거 해임하고 주주제안 이사를 선임하고자 했다. 때문에 영풍제지 이사회 측에서는 선제적으로 이사회가 가진 권한을 분류해 감독과 집행을 이원화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화시 이사회를 공격하더라도 집행임원의 권한이 남아 일정부문 방어가 가능해 진다.

영풍제지의 경영권 분쟁은 모회사 대양금속과 KH그룹의 다툼에서 비롯됐다. KH그룹이 대양금속에 적대적 M&A에 나서면서 영풍제지에도 주주제안 안건을 발의했다. 당시 제이브이씨조합 주주 제안은 모두 부결됐다.

◇신임 이사회 후보 KH그룹 인사 포진

이번 이사회 구성원 후보에도 KH그룹의 인사들이 포진돼 있다. 달라진 건 추천인이다.

지난해 10월 제이브이씨조합 측의 제안이었던 권혁범 KH건설 대표, 김경곤 KH그룹의 알펜시아 기획조정 총괄실장, 장철균 SCA그룹 금융투자 연구소장, 김태룡 변호사 등이다. 새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배승리 알펜시아 해외사업팀장과 박성진·윤금재 KH미래물산 사내이사 등이다.


이번에는 추천인이 '이사회'로 명시돼 있다. 2024년 10월과 현재의 이사진을 보면 조상종 전 영풍제지 대표를 제외하면 대동소이하다.

올해 상반기말을 기준으로 정상윤, 신동협, 이승현 사내이사와 박석훈, 김종훈, 박정석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중 신동협, 박석훈, 김종훈, 박정석 이사는 작년 주주제안으로 해임안이 상정됐다 부결된 이들이다. 비슷한 구성원의 이사회가 유지됐지만 같은 이사회 후보를 두고 지난해에는 주주제안 안건으로 처리하고, 올해는 이사회가 선임을 건의한 셈이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 매각을 공식화했다. 389만5915주로 매각 후 대양금속의 영풍제지 지분은 6.97%다. 대양금속이 9일 공시한 타법인주식및출자증권처분결정을 보면 '상기 발행회사 임시주주총회에서 매수인이 지정한 이사 선임'이라는 조건이 있다.

업계 관계자의 전언과 이 조건을 고려할 때 영풍제지 지분과 경영권 매수인에 KH그룹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KH그룹이 영풍제지의 인수자인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KH그룹은 1975년 보암산업으로 출범해 인수합병 등을 통해 성장한 중견그룹이다. 조명과 건설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IHQ와 KH필룩스, KH건설, KH미래물산, 장원테크 등의 계열사가 있다. 알펜시아 리조트도 KH그룹 소속이다.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 원천 차단하는 정관변경

신설과 보강 항목을 보면 적대적 M&A 방어 목적이 분명해 보인다. 영풍제지는 정관 변경의 건에서 적대적 인수합병 조건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우선 주주총회의 의결 방법에서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적대적 M&A에 따른 안건들이 상정될 경우 발동된다.

본래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과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의결 조건이었다. 초다수결의제가 시행되면 적대적 인수합병과 관련해 기존 이사의 해임을 결의하거나 신규 이사 등을 선임할 때, 해당 안에 대한 정관의 개정을 결의할 때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이자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2 이상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사실상 외부 세력의 이사회 진입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골든 패러슈트(golden parachute)도 명시했다. 퇴직 보상금의 지급 항을 신설하고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가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인하여 그 의사에 반하여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직에서 해임될 경우에는 회사는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50억원, 사내이사에게 30억원을 퇴직 후 7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자금조달 레버리지도 대폭 확대했다. 회사 발행 주식의 총수 상한을 1억주에서 2억주로 늘리고 전환사채 발행한도는 사채의 액면총액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했다. 또 신설항을 통해 회사는 시가하락에 의한 조정후 전환가액의 최저한도를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전환사채 부여시의 전환가격의 100분의 70 미만으로 정할 수 있다.

의사결정 체계 일원화로 사업 재편도 목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목적도 큰 폭으로 늘렸다. 신사업으로는 국내외 부동산매매업부터 토목건축공사업, 조경업, 농업, 생명공학, IT와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약 70가지가 명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