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우조선해양의 마지막 사외이사였다. 그는 "지금
한화오션이 잘 하는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 성과의 뿌리가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고민 끝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산업은행과 이사회는 대우조선해양의 자금경색 해소와 회생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2조원이 넘는 자금 조달 국면에서 한화그룹의 인수
대상자 선정은 최선이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김 교수는 '선장 출신 법학교수'다. 일본 산코기센 선원으로 출발해 대형 상선의 선장까지 지낸 해운 현장 전문가다. 동시에 해운법 권위자로 삶의 궤적을 빽빽하게 그렸다. 인터뷰는 이사회 참여 계기부터 인수전에 대한 평가, 공적지분과 계약구조에 관한 논의,
한진해운과
HMM의 사례, 그리고 좋은 이사회의 조건으로 이어졌다.
더벨은 공식 유튜브 채널(@thebell_news) 영상을 통해 김 교수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영상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theBoard를 통해 정리했다.
◇산은 제안에 이사회 합류 "대우조선 빠른 안정화 목표"
김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의 이사회에 합류하기 전부터 오랜 기간 해상법에 천착해 왔다. 바다 위의 일을 크게 해운·물류와 선박 건조인 조선 사업으로 나눈다면 그는 해운 부문 전문가다. 국립한국해양대 등 학계뿐 아니라 해양수산부와 정계까지 해운 관련한 전문가가 필요하면 보통 그를 찾았다.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로 합류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인사추천위원회가 김 교수에게 사외이사 역할을 제안했고 조선업에도 관심이 컸던 김 교수가 받아들였다.
김 교수는 2022년 3월 주주총회부터 대우조선해양의 한화그룹 인수가 확정돼 이사회가 바뀐 2023년 5월까지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오션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 마지막 이사회였다. 그만큼 대우조선해양의 유동성 문제와 매각 등 이사회가 논의해야할 문제가 산적했다.
그는 산은의 최우선 과제가 대우조선해양의 안정화였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당시 산은의 관점에서는 대우조선을 빠르게 안정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약 2조원의 조달이 필요했다"며 "
한화그룹이 적기에 선정이 됐고 그때로서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화그룹의 품에 안기기로 했지만 그 이후도 고민점이었다. 늘 풍랑 앞에 있는 조선업의 특성상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었다. 김 교수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모두 떠나버리면 개입하기 쉽지 않다"며 "영구채 발행을 하고 채권을 주식화해 최대주주가 되는 일련의 과정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현재 주주로 남아 있는 것이 순발력 있게 기업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했다.
대우조선은 2022년 9월 이사회를 열고
한화그룹을 상대로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김 교수도 함께했던 논의다. 당시 산은의 대우조선 지분율은 55%에서 28.2%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산은의 블록딜 등을 거쳐 2025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산은의 지분은 15.25%로 유지 중이다.
◇해운·법 전문가의 제언 "자금경색, 선수금으로 해소"
매각을 고려했지만 회사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자금경색 해소도 주요 쟁점이었다. 김 교수는 해운 전문가로서 해법을 찾았다. 2023년에는 조선업계 호황기가 오면서 수주는 늘었지만 자금 면에서는 수월하지 못했다. 헤비 테일(Heavy Tail) 방식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대우조선의 자금으로 먼저 건조를 하고 인도 시에 대금을 받는 방식이어야 했다"며 "당시 2조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해운사의 사정을 아는 해운사 출신으로서 선수금을 미리 받는 방식이 가능한 지 알아봤다"고 했다. 이어 "해운계가 마침 수익이 많았고, 선수금을 미리 주면 조선사에서도 일부를 할인해주는 방식 등을 제시해 그런 방향으로 유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선수금 제도 역시 고민거리였다. 만약 선수금을 받아간 후 조선사가 생산 중단 등의 이유로 선박을 제대로 건조하지 못하게 되면 선수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때는 이미 조선사가 파산 위기라는 염려였다. 그는 선주가 조선업체에 선수금을 지급할 때 은행이나 보험사 등으로부터 받는 보증서인 선수금 환급보증서(RG)에 대해 논의를 지속하는 한편 학문 연구를 이어갔다.
해운사 출신으로서 조선사의 사외이사로 일했던 배경이 주효했다고 그는 전했다. 김 교수는 "조선과 해운은 연결돼 있는 만큼 사외이사의 구성이 모두 조선과 관련한 사람만 있는 것보다 해운 쪽 전문가가 포함되면 이사회에서 다층적인 논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짚었다.
◇"좋은 이사회, 포트폴리오 다양해야…이해관계 전문가 필요"
같은 이유로 그는 좋은 이사회란 이사진의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이사회라고 봤다. 김 교수는 "회사 관련 법 전공자와 회계사, 그 산업의 전문가를 포함해 포트폴리오가 잘 된 이사회가 좋은 이사회"라며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언제나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를 보며 전문가의 적극적인 활동과 함께 베테랑 사외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헀다.
김 교수는 "
한진해운 같은 정기 선사들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항만의 채권자들이 배를 압류하고, 화물을 맡길 화주들은 흩어져 버린다"며 "
한진해운에서는 압류되지 않도록 충분한 유동성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배가 오랜 기간 잡히게 되면서 다른 회사가 인수하지 못할 지경까지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과 마찬가지로 산은이 매각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HMM에 대한 조언도 내놨다. 김 교수는 "해운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부침이 있고 국제 경쟁이며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며 "정부가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유지해 최후의 보루를 남겨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사외이사로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한 안건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회사가 발전하는가 사라지는가는 지배구조에 달려있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