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소유가 분산된 대표적인 기업이다. 공기업에서 출발했다가 민영화를 이룬지 20년이 넘었지만 거버넌스 면에선 여전히 공기업 성격을 띤다. 이사회와 경영에 정치권과 관료 영향력이 여전하다. 정권 변화 때 마다 이사회도 물갈이되는 관행도 이어지고 있다. 이사회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KT 거버넌스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본다.
KT의 거버넌스는 2002년 민영화된 후 23년 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쳐 왔다. 고위 관료가 주요 경영진으로 부임하는가 하면 이사회가 당시 정권에 친화적인 인사들로 꾸려지기도 했다. 최근 정권 교체와 함께 김영섭 대표가 연임 포기를 공식화하면서 다시 한번 거버넌스가 크게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영화된 KT의 거버넌스는 여전히 '정권'과 '관료'란 키워드에 종속돼 있다. 뿌리깊은 KT 거버넌스의 특징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왜 변화하지 않을까. 소유분산 기업이란 특징과 라인과 인맥으로 이어지는 이사회 구성, 그리고 이를 당연시 하는 기업 문화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 2년 전 정권 입맛에 따라 이사진 연쇄 사퇴
KT 거버넌스의 가장 최근 변화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안 됐던 시점이다. 이사회가 선임한 윤경림 당시 대표이사 후보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 시민단체가 차기 대표로 낙점된 윤 사장과 당시 구현모 대표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영향이 컸다. 윤 사장은 "더 버티면 KT가 힘들어진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윤 사장이 후보직을 내려놓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일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당시 KT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사외이사는 "정권이 바뀌고 정말 다양한 곳에서 간섭이 시작됐다"면서 "분산기업이 가진 약점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사외이사진 중 가장 먼저 사임 의사를 밝힌 이는 참여정부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이강철 사외이사이었던 점도 의미심장하다.
기존 사외이사들이 대거 사퇴했지만 당시 구현모 대표를 비롯해 표현명·강충구·여은정 등 3명의 사외이사들은 신임 대표와 사외이사를 새롭게 선임해 자신들의 권리의무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이사회에 남아 후보 선임 절차를 진행했다. 다만 당시 이사회는 후보를 직접 물색하기보다는 주요 주주와 외부 채널을 통해 후보를 추천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해 6월 말 KT 임시주총에서 7명의 사외이사가 새롭게 선임됐다.
이때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돼 현재까지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당시 윤석열 정부 측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한 최양희 사외이사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환경부 차관으로 활동한 윤종수 사외이사가 대표적이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의 경우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 소속 미디어콘텐츠산업 융합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해당 사외이사들은 그해 8월 임시주총을 개최, 당시 김영섭 전 LG CNS 대표를 새로운 KT의 대표 후보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시장에선 외부 인사인 김 전 대표를 KT 대표 후보로 선보인 데 대해 뒷말이 많았다. KT의 한 전직 임원은 "정보통신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면서도 "KT 곳곳에 포진해 있는 낙하산 인사가 매개가 돼 정부 측 의중을 반영한 인사 결과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정부 색깔에 맞춰 거버넌스를 꾸린 사례는 그전에도 많았다. KT가 민영기업으로 20년 넘게 운영되는 동안 KT는 6번의 정권 교체기를 경험했다. 정권이 교체되면 진영에 상관없이 사외이사진 절반가량이 교체되는 사태를 겪었고 새롭게 구축된 이사회는 어김없이 새로운 대표를 선임했다. 민영화 이후 이용경→남중수→이석채→황창규→구현모→김형섭으로 이어지는 KT 대표들은 대부분 정권과 임기를 같이 했다.
특이한 점은 이전 정부과 새로운 정부 진영에 관계없이 정권 교체기 대부분 이사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민영화 절차가 추진되고 김대중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5명의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뀐 지 2008년 3월 주총에서는 2명의 사외이사가 새로 뽑히는 데 그쳤지만 그 이듬해 6명의 사외이사가 선임돼 이사회 색채가 친정부 색채로 바뀌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KT 이사회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대표로 선임했다. 당시 이 대표는 외부 인사를 적극 영입하며 고강도 개혁을 추진, 회사 안팎으로 상당한 잡음이 일기도 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대표와 당시 핵심 경영진은 검찰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아 강도 높은 수사를 받게 됐고 그 여파로 2014년 3월 주총에선 5명의 사외이사가 새롭게 선임되며 이사회 성격이 변했다.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기에 맞물려 이사회 면면이 크게 변하는 이유로 '뚜렷한 소유주가 없다는 점'을 든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전까지 수년여 간 국민연금공단이 가장 큰 지분을 들고 있었다. 여기에 국가 기간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보니 정부 목소리가 스며 들어오기 쉬운 구조다. 소위 낙하산이 주요 경영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경우에는 이사회 장악력도 세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이다. 지난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KT 고객 무단 소액결제 침해 사고가 터졌고 이달 초 김영섭 대표가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KT 거버넌스가 다시 한번 대격변기에 놓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대표 선임에 관여하는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전임 정권에서 발탁됐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외풍에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라는 게 KT 안팎의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