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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EB 판결문 분석

디스커버리 제도 필요성 제기…실제 EB 발행 여부에 눈길

⑤실제 EB 발행치 않으면 트러스톤운용 소기 성과…항고심 판단 놓고 회의론도

이돈섭 기자

2025-11-14 10:37:51

편집자주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 내 뜨거운 화두였다. 해당 개정안을 처음으로 적용한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태광산업 간 소송은 많은 시장 관계자 눈길을 끌었다. 법원은 태광산업 손을 들어줬고 트러스톤운용은 항소했다. 법원의 1심 판결문에서 따져볼 내용은 다양하다. theBoard는 해당 판결문을 토대로 이번 판결이 남긴 쟁점들을 짚어본다.
태광산업 자사주 대상 EB 발행 관련 항고심 개시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태광산업이 기존 계획대로 EB를 발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소송에서 이기진 못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사주 대상 EB 발행을 막은 셈이 되기 때문에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태광산업은 이달 중 이사회에서 EB 발행 여부를 결정해 공시한다는 계획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트러스톤운용 측이 제기한 태광산업의 자사주 대상 EB 발행금지 가처분 항고에 대한 심문 기일을 현재까지 통지하고 있지 않다. 트러스톤운용이 관련 가처분 소송에 패소한 뒤 항고장을 제출한 건 지난 9월 중순 무렵이다. 항고 제기 후 두 달여 간의 시간이 지나도록 재판부가 관련 기일 조차 설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시장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해당 재판 건에 대한 판단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한 시장 관계자는 "처음 소를 제기했을 때부터 법원 안에서는 이 사건을 피하려는 기조가 뚜렷했다"면서 "상법 개정안 취지를 감안해 기존 판례와 다른 새로운 판례를 선보이면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시장의 원성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재판부가 트러스톤운용 측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지 않자 시장과 일부 정치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 김남근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재판부는 일반주주 입장에서의 주주가치 침해를 살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직 판사 중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법조계와 시장 일각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태광산업 자사주 대상 EB 발행 가처분 소송 내용

이런 상황에서 시장의 눈길은 태광산업으로 옮겨지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태광산업이 자사주 기반의 PRS 발행도 검토했지만 금감원 제동으로 쉽진 않을 것"이라면서 "태광산업 측이 EB 발행 검토에 투입한 재원과 소송에 대응하는 재원 등을 두루 고려하면 출혈이 작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EB를 발행하긴 부담스러워 발행 시기를 늦춘다면 결국 트러스톤운용이 소정의 성과를 거두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를 감안한듯 재판부는 1심 심문 과정에서 태광산업 측에 향후 EB 발행 계획을 묻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태광산업이 EB를 발행하지 않으면 해당 소송은 각하 결정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 당시 태광산업 측은 시장 여건을 검토해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대답했다는 전언이다. 태광산업 측은 이달 중 이사회를 개최해 자사주 대상 EB 발행 여부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재공시한다는 계획이다.

법조계에선 항고심이 기존 판결을 뒤짚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이 트러스톤운용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이 자사주를 한국투자증권에 넘기면 한국증권이 이를 태광산업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제3자에 양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재판부가 태광산업과 한국증권이 우호 관계라는 걸 증명하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러스톤운용은 한국증권 계열사가 과거 상장사 EB를 매입하고 별도의 콜옵션을 체결한 것을 해당 주장의 근거로 들었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트러스톤운용이 이를 완전히 밝히긴 쉽지 않아 일각에선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 경우 피고로 하여금 그 내용을 입증케 함으로써 시장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계와 시장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제도 도입이 쉽지만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영업비밀은 물론 다양한 기업의 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시장의 의혹 등으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 요소"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 결과가 뒤집어지려면 재판부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