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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EB 판결문 분석

교환가격 산출, 시장과 발행사 모두 만족할 수 없을까

④EB 교환가격 산정 과정에서도 유지청구권 행사 범위 도마 위

이돈섭 기자

2025-11-07 16:06:03

편집자주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 내 뜨거운 화두였다. 해당 개정안을 처음으로 적용한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태광산업 간 소송은 많은 시장 관계자 눈길을 끌었다. 법원은 태광산업 손을 들어줬고 트러스톤운용은 항소했다. 법원의 1심 판결문에서 따져볼 내용은 다양하다. theBoard는 해당 판결문을 토대로 이번 판결이 남긴 쟁점들을 짚어본다.
유지청구권 행사 조건이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한정돼 있는 점은 가격 문제에서 도드라진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 주가가 저평가 돼 있어 태광산업이 산정한 교환가격대로 EB를 발행하면 내재가치와 시가의 차이만큼 회사가 손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시가는 기업 재무 및 거버넌스 요소를 모두 반영해 형성된 것이므로 이사회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시장에선 유지청구권 행사 조건 대상에 주주 전체가 명시되지 않는 한 결과가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트러스톤운용이 지적하고 있는 교환가격 산정 문제는 결국 주주 이슈라는 인식에서다. 트러스톤운용은 항고에서 교환가격 산정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가 현행 상법 조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한 시가 기반 전환가격 산정 방식을 뒤짚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의 현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태광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현재 0.3배 수준에 불과하다. 태광산업이 시가 기준으로 주가를 기준주가를 산정한 뒤 여기에 10% 할증을 적용했다고 하더라도 트러스톤운용이 제기하는 기업 내재가치를 충족하진 못한다. 트러스톤운용은 최근 수년 간 태광산업 주가 저평가를 지적하며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편 등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 판결은 트러스톤운용의 주장이 당위에 입각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에서 자금조달 방식은 이사회 경영판단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가급적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트러스톤운용이 제기하는 자사주 적정가치 문제도 결국 주가순자산비율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고 이 가격을 기반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했을 때 거래가 실제 이뤄질 것이란 사정을 제시하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①석유화학·섬유 산업은 업황이 나빠져 태광산업이 최근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점 ②태광산업이 지난해 9월부터 신규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한 점 ③재정건전성을 중시해 무차입 경영 기조를 견지해 온 점 ④이사회 개최 시 주가가 100만원대로 급등해 자사주 활용 개연성이 커진 점 ⑤자사주 처분 관련 법령 요구 사항에 대한 결의가 이사회에서 이뤄진 점을 들어 태광산업 손을 들어줬다.

특히 태광산업의 산정한 교환가액은 '공개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라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시장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주가에 10% 할증한 가격으로 정했으며 여기에는 트러스톤운용이 지적하는 거래량과 배당성향, 주가순자산비율(PBR),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최대주주와 관련된 위험 등이 포함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트러스톤운용도 지난 7월 당시 운용하고 있던 펀드가 갖고 있던 태광산업 주식 중 2만5970주를 이 사건 교환가액 117만2251원보다 낮은 주당 115만5000원에 매도한 점에 비춰보면 태광산업이 제시한 교환가격이 부당하다고 여기기 힘들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트러스톤운용이 주장하는 태광산업 주가 적정가치가 지금의 시장 가치보다 높다면 펀드가 보유한 주식을 굳이 당시 시가로 팔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태광산업 주가 수준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트러스톤운용과 지금의 시가가 아니면 어떻게 교환가격을 산정하느냐는 태광산업이 대립했고 법원은 태광산업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송옥렬 서울대 교수는 "가격에 문제가 있을 때 법원이 이 가격이 적절한지 판단하긴 쉽지 않다"며 "가령 회계법인이 기업 고객이 원하는 가격을 산정할 수도 있는데 이 가격의 적절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법 조문 자체가 해석의 한계를 안고 있다는 인식이다. 상법 제402조가 규정하고 있는 유지청구권 행사 요건은 현재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는데 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커진 만큼 이사회 결정으로 손해를 입은 주주가 유지청구권을 행사하려면 해당 조문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는 "과거 에버랜드와 제일모직 합병 과정과 LG화학 배터리 사업 분사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특정 기업 가치 산정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라며 "결국 시장뿐 아니라 법원도 상법 각 조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한 기존 판결 내용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러스톤운용은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는데 해당 가격 문제 역시 포함돼 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