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M&A가 흔해진 시대, 기업의 '국적'은 여전히 상징적·실질적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였을 때 단순한 소유권 이전 이상의 다층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지배구조와 계열사, 경영환경의 재편과 그 과정에서의 거버넌스 충돌 등이다. 글로벌 M&A를 앞둔 기업들이 미리 대비해야할 어젠다이기도 하다. theBoard는 국적 변화가 지배구조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망해본다.
나스닥 상장사 시절 포시마크 이사회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보드 구성을 따랐다. 상장 직전과 직후 이사회를 보면 과반을 독립이사로 구성했고 독립이사진에는 벤처캐피털과 국부펀드 관계자들이 포진했다. 또 글로벌 리테일과 빅테크 경험을 갖춘 이사도 영입했다. 공모 후 성장 과정을 투자자·기존 경영진이 나누는 구조였다.
네이버 인수와 나스닥 상장폐지 후 포시마크의 이사회는 180도 달라진다. 단일 주주가 모든 의결권을 가진 구조로 전환되면서 이사회는 투자자를 대변하는 조직에서 네이버의 결정에 따라 포시마크의 포트폴리오와 전략을 조율하는 곳으로 바뀐다. 2025년 김남선 네이버 전략투자대표가 포시마크의 이사회 의장에 이어 최고경영자까지 맡으면서 네이버 색채는 한층 짙어졌다.
◇투자자·전문가로 구성, 다양성 강조한 초기 이사회
포시마크가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를 보면 초대 이사회 멤버는 7인이다. 임원진으로는 마니쉬 찬드라 창립자 CEO와 아난 카샤프 최고재무책임자(CFO), 존 맥도날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선임했다. 이중 마니쉬 찬드라가 사내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포시마크 나스닥 상장 당시 주요 임원과 이사회 구성. 출처=미국증권거래위원회
나머지 6인은 모두 독립이사로 구성됐다. 상당수가 벤처캐피탈과 국부펀드에 적을 뒀던 인물이다. 나빈 차다 메이필드 펀드 전무와 베서머벤처파트너스 출신이자 테크 기업 CEO를 거친 제프 엡스타인 이사, 싱가포르 정부 국부펀드 테마섹의 북미 상무이사로 재직했던 존 마렌 이사 등이다. 한스 텅 이사는 VC GGV캐피털의 매니징 파트너였다.
상장 전 포시마크의 주요 주주를 보면 메이필드와 GGV캐피털 등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또 앤더슨 인베스트먼트는 테마섹의 연계 펀드다. 따라서 이 독립이사들은 자본 제공자의 대리인이면서 상장 후에도 전략과 자금조달, 인수합병을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산업 전문가들도 배치했다. 제니 밍 전 샬럿루스 대표는 미국 의류 브랜드 전문가로서 독립이사 역할을 맡았다. 사회공헌과 인재관리, 커뮤니케이션, 셀러브리티까지 이사회에 고루 배치했다. 그러면서 이사회와 경영진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소위원회는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 후보자 지명과 기업 지배위원회 등으로 세분화했다.
상장사 시기 포쉬마크 이사회가 맡았던 감독 대상도 비교적 넓었다. 보상과 지분 인센티브, 데이터·프라이버시 리스크, 커뮤니티 운영과 브랜드, 상장 이후 분기별 성장률을 관리하는 기준선까지 모두 이사회가 다룬다. 구성과 이사회의 영향력만 보면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견제 기능이 충실히 작동하는, 선진적 이사회에 가까웠다.
포쉬마크는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됐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이사회 구성과 보수, 위원회 활동을 공시해야 하는 의무도 사실상 사라졌다. 이사회 멤버 구성과 회의 횟수, 보수 수준 등은 더 이상 연례 위임장과 사업보고서 형태로 시장에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네이버의 발표 등을 통해 이사회 구성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김남선 포시마크 대표가 이사회를 이끌고 페이스북 출신 데보라 리우(Deborah Liu)를 이사로 영입했다. 헤더 프리드랜더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네이버가 영입한 인재다.
포시마크 상장 전 주요 투자자. 출처=미국증권거래위원회
이 이사회가 대표하는 이해관계자는 하나로 정리됐다. 포시마크의 발행주식 전량을 네이버가 보유하게 되면서 이사회는 다수의 기관투자가를 상대하던 상장사 보드에서 네이버 단일 주주의 전략을 실행하는 전략 보드로 역할이 이동했다.
포시마크 인수 당시 공시를 보면 합병 완료 후 이사회는 네이버가 지명하는 이사들로 재구성되고 기존 상장사 시절의 이사진은 대부분 임기를 마치거나 사임했다.
다만 네이버는 인수 직후 포시마크의 현지 경영진과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마니시 찬드라는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해 올해까지 수행했다. 공동 창업자와 주요 임원들도 대거 유임됐다. 포시마크 브랜드와 커뮤니티 운영, 미국 내 인력 고용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비상장사로 전환됐지만 사업 운영 측면에서는 상장사 시절의 연속성을 의도적으로 살린 셈이다.
네이버로의 완전한 전환기를 꼽으라면 2025년이다. 3월 네이버는 김남선 당시 CFO를 글로벌 전략투자 책임자로 이동시킨다. 북미 자회사 포시마크 이사회 의장도 겸한다. 네이버의 가장 깊숙한 곳을 다루던 C레벨에게 포시마크의 의사결정권을 준 셈이다.
같은 해 8월 포시마크는 최고경영자 승계 계획을 공식화한다. 마니시 찬드라 초대 CEO가 15년간 앉았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보드 멤버로 남는다. 김남선 의장이 10월 1일부로 CEO를 겸직하기로 했다. 창업자 중심 경영에서 네이버 출신 최고 경영자 체제로 무게추가 완전히 이동한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마니시 찬드라 전 대표와 김남선 대표, 네이버 측에서 영입한 데브 리우(사진) 등이 보드 구성원이 됐다. 인수 직전에는 벤처캐피털 파트너가 주를 이뤘던 보드 구성이 그룹 전략과 기술 중심의 이사회로 재편된 셈이다. 100% 대주주가 존재하기 때문에 외부 자금유치, 또 그 기관투자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부담이 크게 축소된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