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시장에서 법무법인 한누리의 존재감은 독특하다. 투자자 주주 권리 소송 전문 로펌으로 이름을 알려온 한누리는 그간 굵직굵직한 증권 금융 사건에서 피해자 권리를 대리하며 의미있는 판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왔다. 한누리 활약 중심에는 창립멤버인 김주영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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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김 대표 변호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회사법 자문 변호사로 일하다가 1990년대 후반 참여연대 소액주주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일반주주와 투자 피해자 권리를 대리하는 송무 변호사로 변신했다. 2000년 한누리 설립을 주도하고 3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활약해 온 그는 더벨과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만으로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 "태광산업 EB 가처분 절반의 성공이라지만 애석한 결과일뿐"
한누리는 트러스톤이 태광산업
대상으로 제기한 자사주 EB 발행 가처분 소송에서 트러스톤 측 법률 대리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가처분 소송은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대폭 강화한 상법 개정안을 처음 적용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지만 결과는 태광산업의 승리였다. 트러스톤 측은 즉시 항고했지만 지난달 태광산업이 EB 발행 계획 절차 자체를 철회키로 하자 다툴 실익이 없어졌고 소송은 그대로 마무리됐다.
시장에선 트러스톤이 가처분 소송을 통해 태광산업 EB 발행을 실질적으로 저지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가처분 소송을 이끌어 온 한누리 측 입장은 달랐다. 김 대표 변호사는 "굉장히 애석한 결과"라면서 "상법 개정 이후 실질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된 점과 잘못된 1심 판결에 대해서 항고심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사라진 점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태광산업 자사주 EB 발행 과정에는 문제점이 많아 보였다. 지난 5월 말
태광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9000억여원에 달했다. EB 발행으로 조달할 자금은 3186억원 수준인데 EB를 굳이 발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투자증권이
태광산업 자사주(24.4%)를 인수하면 기업 지분 10% 이상 매입 시 금융당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야 하는데 특정 주주 이익을 고려치 않고는 동인을 해석하기도 어려웠다.
김 변호사는 "가처분 소송에서는 증인 심문과 문서 조회 등이 제한돼 있지만 과거 한국투자금융지주 산하 PE가
SK그룹과 파킹 거래를 했던 전례가 있었고 향후 주주 간 계약과 콜옵션 존재가 확인된 만큼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정황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태광산업 측은 자사주 인수자로
한국투자증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과거 비슷한 거래를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재판부는
태광산업이 신사업 자금이 정말 필요했는지 그리고 왜 하필 한국증권으로 하여금 물량 전량을 인수케 했는지 따졌어야 한다"면서 "기업 가처분 소송은 여러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재판부가 입증책임 원칙 뒤로 물러서곤 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대표적 이유"라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항고심 판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학계에서 관련 문제를 계속 제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이사회에 결정적 순간 필요한 건 용기…주주 의식해야"
시장에서는 한누리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상법 개정이 초래한 변화는 분명하지만 법원이 누적해 온 판결을 뒤짚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간 '다양한 주주권 행사 소송에 관여해 온 한누리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생각해보면 김 변호사가 그간 걸어온 길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분식회계 소송과 주주권리 보전 소송에서 의미있는 판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김 변호사는 "주주 권리 행사가 자본시장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이 영역에서 변호사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뛰어든 것"이라면서 "변호사라면 누구나 전문성을 갖추길 원하는데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시장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적 욕구도 충족하면서 전문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최근에는 기업 이사회가 상법 개정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해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가 과거 상장사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이사회 실무에 대한 현실적 진단도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아무리 체계가 확실한 기업이라도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다수 의견에 맞서 반대 의견을 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경영진과의 관계, 재선임 여부, 보수 문제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조적으로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건 결국 용기인데, 그 용기는 개인 성향에서 나오기보다는 제도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며 "주주가 이사회를 보고 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이사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의 실질적 역할 강화를 위해서는 주주와 이사회 간 공식적 소통 창구 마련, 주총 전 주주 질문권 제도화 등 구조적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자본시장에 행동주의 펀드들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평가하고 있다. 펀드들이 이사회 운영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기업 거버넌스가 개선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
태광산업 사태에서 보듯이 법만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게 아니고 시장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주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