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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노트

거수기 논란의 복잡한 속사정

김태영 기자

2026-03-26 08:17:21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이사회 거수기 논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매번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만 던진다는 것이 요지다.

매스컴 등지에서는 거수기 사외이사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경영진 주도 안건에 대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라고 주문한다.

얼마 전 한 전직 사외이사를 만나 얘기를 들었는데, 거수기 논란의 실상은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것 같다. 그는 한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간혹 반대표를 던지면서 우수 거버넌스 기업으로 종종 거론되던 곳이다.

그런데 그 내막은 달랐다. 거수기 논란에 부담을 느낀 최대주주 오너와 일부 사외이사가 부결되지 않는 선에서 반대표가 나올 수 있도록 미리 말을 맞췄다고 한다. ‘보여주기식 반대표’였던 것이다.

그는 거수기 논란이 사실과 일부 다르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 사례를 소개했는데 미국에서도 이사회 안건은 만장일치가 기본이라고 했다. 안건에 한 명이라도 반대가 나오면 부의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사회 사무국이 사외이사 개개인을 일일이 찾아가 다음 이사회 안건을 설명한다고 했다. 반대 의견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 사람을 계속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만일 이사회 날이 도래했는데도 만장일치가 안됐다면? 대부분 부의하지 않지만 간혹 그 안건을 그냥 올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그 안건에 반대한 사외이사와 CEO가 일종의 신임투표 대결을 치른다.

그 안건이 부결되면 CEO가 사임하고 가결되면 그 안건에 반대했던 사외이사가 사임하는 식이다. 마치 서부극 황야의 결투처럼. 가끔 미국 기업에서 난데없이 CEO가 사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결론은 미국 역시 그만큼 만장일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 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이사회 안건을 두고 이면에서는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