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책당국의 지배구조 규제 강화와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맞물리며 이사회 견제 기능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회사처럼 규제 강도가 높은 업권에서는 사외이사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거버넌스
선진화 정책을 모색하면서 시장은 금융회사 사외이사 역할과 책임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성종 KB라이프생명보험 사외이사(
사진)는 견제의 역할을 강조했다. 회계사와 세무사 출신으로 보험 회계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중앙대 경영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경국립대 법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코스닥 바이오 기업
엘앤씨바이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현재 에어레인과 KB라이프생명 등 두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KB라이프에선 감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다양한 규제를 받는 만큼 이사회 운영 역시 일정 수준 이상 체계화돼 있다. KB라이프 역시 비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 위주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각종 소위원회도 꾸리고 있다. 다른 기업과 비교해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지주와의 관계다. 금융지주의 완전자회사이기 때문에 지주 측 인사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고 임원 인센티브 역시 지주사 주가 변화에 연동돼 있다.
이 같은 구조만 놓고 보면 사외이사 역할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박 사외이사는 오히려 사외이사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외이사는 "임원은 현실적으로 자기 임기를 고려해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직원들은 그보다 더 장기적으로 회사를 바라보기 마련"이라면서 "이사회는 장기적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역할은 '견제'다. 보험사 회계 처리에는 다양한 가정 상황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이 숫자가 자의적으로 설정된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경영진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숫자를 해석할 여지가 있다. KB라이프는 이 점을 스스로 인지해 사외이사와 외부 감사인이 경영진 없이 별도 소통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스스로 마련해 놓은 셈이다.

회계 처리 방식을 문제 삼을 땐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마련인데 이 경우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회계를 규범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회계의 근본적인 역할은 정보 이용자가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회사의 충분한 회계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시비에 대한 판단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회계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 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박 사외이사는 "감리를 해서 분식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순간 부정을 저질렀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분식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기 마련"이라며 "자본시장에 회계 정보를 적시에 충분하게 전달하도록 제대로 공시가 이뤄졌는지 여부가 회계 처리 적정성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에 인센티브를 제공, 책임과 역할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박 사외이사는 "감사 품질이 좋아졌다고 해서 회사 수익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성과를 측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주주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독립성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CFO가 회사 내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해야 감사위원의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사외이사는 "CFO는 회사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결정해주는 사람"이라며 "회계 처리에 사후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일정 수준 이상 전문성을 가진 이가 CFO를 맡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