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상장사들이 소각과 활용 사이 줄타기에 나서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소각을 강제하면서도 예외 조항을 열어둔 탓에 기업들이 오히려 자사주 활용 여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기보유 자사주 처리 계획을 아직 선보이지 않은 상장사가 적지 않다는 점 역시 이런 고민을 방증하고 있다는 고민이다. 전문가들은 이사회가 기업과 시장 간 소통에 적극 나서 오해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조언한다.
코스피 상장사 LVMC 사례가 대표적이다. LVMC는 기존 정관 자사주 항목에 '회사가 매입한 모든 자기주식은 소각돼야 한다'는 문구를 기재하고 있었다. 상법 개정에 앞서 이미 자사주를 매입과 동시에 소각한다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LVMC는 이달 31일 정기주총에서 '임직원 보상을 목적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거나 전략적 제휴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기존에는 정관 상 자사주 매입 즉시 이를 소각토록 설계돼 있었지만 개정 상법 예외 조항을 정관에 그대로 반영하면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이번 주총에서 정관 항목을 바꾸는 안건이 통과되면 LVMC는 내년 정기주총 전까지 해당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으로 처분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상법 개정이 오히려 LVMC의 자사주 정책의 후퇴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말 LVMC가 보유한 자사주는 총 30만여 주다. 전체 발행주식의 0.16%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26일 종가 기준 시가를 반영하면 5억원 정도의 규모다. LVMC가 지금까지 자사주를 취득하고 실제 이를 소각한 이력은 없지만 정관에 소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유를 실제 명시한 것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물량이 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서도 "개정 상법이 초래한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LVMC는 동남아시아 한상 기업이다. 2008년 설립된 코라오홀딩스를 모체로 삼고 있는 LVMC는 현재 태국 방콕에 대표 사무실을 두고 베트남과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 각국 일대에 완성차와 오토바이 유통 사업과 수리 및 렌탈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작년 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470만 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해 105% 성장했다. 다만 주가는 수년째 우하향 그래프를 그려 현재 16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LVMC 사례가 자칫 시장으로 번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달 초 자사주 의무 소각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자사주 보유 처분 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은 상장사가 적지 않다. 개정 상법이 기보유 자사주의 경우 법 시행 이후 1년 6개월 이내 소각해야 한다는 기한을 명시해 수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는 점도 있지만 자사주 보유 처분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영향도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 상법이 정하고 있는 소각 기한이 현재로선 수개월여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급하게 자사주 처분 계획을 발표하기보다 주변 환경 변화를 살핀 뒤 신중하게 추진하자는 게 대부분 기업들이 가진 생각"이라면서 "개정 상법이 적시하고 있는 예외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기존 주주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상법 취지를 역행하는 듯한 모습이 관측되기도 한다. 최대주주와 인연이 있는 상장사와 자사주를 맞교환해 상호주를 갖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 곳이 있는가 하면 상법 개정을 계기로 주식연계 보상제도 도입을 추진하는데 최대주주 일가에 주식 인센티브 지급을 몰아줄 수 있는 수단을 찾는 곳도 있다. 기보유 자사주를 M&A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오너십 피증여
대상을 딜에 참여시키려는 곳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LVMC가 기존 자사주 정책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 건 자칫 기업들의자사주 운용 인식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사주를 자기 지배력 유지 혹은 확대 차원에서 취득한 곳이 많다"면서 "현행법 상 예외 조항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문의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의 키는 이사회가 쥐고 있다. 주주인 이사가 개정 상법 취지에 역행하는 안을 제기하더라도 이사회 차원에서 전체 주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사외이사도 자사주 처리 방식에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면서 "결국 오너와 임직원 의지가 너무 일방적인 경우 시장 흐름을 감안해 이사회 합류를 재고할 필요도 있겠다"고 강조했다.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시장 소통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서하 BCG 파트너는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언제든지 주주 행동주의 공격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주주의 요구 사항은 결국 주가를 올려달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사회 차원에서 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논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