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발행주식의 22% 물량을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는 코스피 상장사 대교가 자사주를 한 주도 소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사주 활용 전략을 짜고 있다. 자사주 보통주를 우선주 공개매수 재원으로 활용하고 남은 물량은 유동화시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자사주를 오래 보유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소각해 주가 부양에 활용하라는 개정 상법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자사주 소각은 없다‘…자본거래로만 활용 교육 서비스 업체 대교는 자사주를 자본거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던 지난해 10월 자사주 보통주 196만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코스닥 상장사 오로라월드에 자사주 보통주 225만주를 넘기고 그 대가로 캐릭터 콘텐츠 업체 오로라월드 보통주 20만주를 받는 상호교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달 초 개정 상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도 내놨다. 대교는 이달 정기주총에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 승인 안건을 올렸는데 여기에는 자사주 보통주 470만주를 활용해 시장에서 우선주 400만주를 공개매수한 뒤 이를 임직원 보상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는 우선주 전체 유통물량 가운데 30%가 공개매수에 참여할 것이란 가정 하에 산출한 숫자로 실제 참여 결과에 따라 취득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우선주 매입 이후 남은 자사주 보통주는 신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대교는 보통주 865만여주(12.5%)와 우선주 555만여주(28.5%)가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정 상법에 따르면 자사주로 사채를 발행할 수 없고 자사주에 질권도 설정할 수 없다. 사실상 인수·합병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시장에 매도해 현금화하는 수밖에 없다. 대교는 구체적 유동화 방식까진 밝히진 않았다.
개정 상법의 취지는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지 못하게 유도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소각하게 하는 데 있다. 예외적으로 경영상 목적이 있는 경우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예외 조항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하지만 대교는 기존 자사주는 전혀 소각하지 않은 채 교환사채 발행과 주식 교환, 우선주 공개매수 등 자본거래 재원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거버넌스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개정 상법 취지가 자사주를 오래 갖고 있지 말고 가능한 한 소각해 주가를 부양시키는 데 일조하라는 것이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없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를 우선주로 바꾸고 나머지 보통주를 신사업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건 기존 주주 지분 희석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주총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 승인 안건은 보통결의 사항이다. 전체 발행주식의 4분의 1 찬성과 출석주주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대교는 강영중 회장이 지배하는 비상장사 대교홀딩스(54.5%)와 강 회장(8.4%), 강 회장 일가 및 회사 임직원이 지분의 총 66.6%를 갖고 있다. 강 회장 측 지분만으로 주총에서 해당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무리가 없다. 2024년 말 지분 1% 미만의 일반주주가 가진 지분 총합은 12.9% 수준이다.
◇ 주가 부양 의지 없는데 임직원에는 주식 보상 대교는 그간 주가 부양에도 소극적이었다. 2016년 3월 1만원대였던 주가는 매년 하락세를 기록, 12일 종가 1565원까지 떨어졌다. 우선주(대교우B)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며 1022원에 장을 마감했다. 주가 부진에는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학령인구 감소가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경쟁사 대비 디지털 전환도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사주 소각 이력이 한 번도 없어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영 승계 이슈도 거론된다. 대교는 강 회장이 대교홀딩스 지분 84.0%를 갖고 지배력을 행사하고 대교홀딩스가 지분 54.5%로 대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8세인 강 회장은 지난해 대교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까지 강호준 대교 이사회 의장과 강호철 대교홀딩스 대표 등 자녀들에게 이렇다 할 주식 증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의 승계 문제도 자사주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과거에는 주식 증여 과정에서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해석과 달리 회사 내부에서는 꾸준히 주식 보상이 이뤄져 왔다. 오너 측에는 주가 부양 의지가 없는데 임직원으로 하여금 주가 부양을 주문한 건 모순적인 행보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현재 이사회 멤버이기도 한 변규숙 교육서비스부문장은 최근 10년 간 자사주 상여금으로 보통주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간 꾸준히 주식을 장내 매수해왔다. 그가 현재 보유한 주식은 1만4800주 규모다. 변규숙 부문장이 주식을 매입하는 기간 주가는 꾸준히 하락한 탓에 그의 최근 10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61%에 달한다. 주식 매수에 투입한 자금은 5900만원에 달하는데 주식 가치는 절반도 안 되는 2300만원에 불과하다.
이사회가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대교는 지난해 정기주총에서 30년 넘게 대교그룹에서 일해 온 박수완 전 대교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재 대교는 사내이사 4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3명 등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사내이사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사외이사진에 오너 일가와 경영진 측에 가까운 인사를 포함하면서 사외이사 영향력이 더 작아졌다는 평가다.
대교 측은 자사주 활용에 대해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대교 관계자는 "개정 상법 요건에 맞춰 자사주 처분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정 상법 논의 과정에서 경영상 목적을 이유로 자사주 보유를 허용할 경우 제도 취지가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면서 "대교 사례는 당시 우려가 현실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