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총수가 있다면 이사회는 무엇을 할까. 기업 이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종종 부딪히는 질문이다. 판단이 빠르고 정확한 오너가 있는데 사외이사 몇 명이 분기마다 모여 앉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솔직히 반박이 궁할 때가 있다.
2년 전 현대차를 두고 쓴 칼럼의 결론은 단순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완성차 3위로 도약하는 현대차를 보며, 좋은 리더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그 결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현대차의 변화는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이 아직 확신하지 못하던 시기에 전동화와 SDV를 미래로 선택했고, 시장보다 먼저 투자했다. 지금의 현대차는 그런 결정들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다만 지금 같은 글을 쓴다면 방향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기업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경쟁력은 리더에게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인다. 이사회를 취재하고 현직 사외이사들을 만날수록 이사회라는 시스템의 무게를 실감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결정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현대차그룹은 오너십이 강한 기업이다. 정의선 회장이 주요 계열사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고, 그룹 전략도 오너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된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사회의 역할도 더 중요해진다. '훌륭한 총수가 있다면 이사회는 무엇을 할까'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좋은 이사회는 오너의 발목을 잡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중요한 결정을 함께 검증하고, 놓친 위험을 짚어내며,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에 가깝다. 견제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현대차그룹도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주요 계열사에 선임사외이사 제도와 함께 사외이사들만 따로 모이는 사외이사회를 도입했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이사회가 세 번 열리는 동안 사외이사회를 여덟 번 열었다. 미국 관세 대응, 중국법인 지분 재편 같은 굵직한 안건이 그 테이블에 여러 차례 올랐다. 경영진 없이 사외이사들끼리 안건을 뜯어보는 자리가 이사회 자체보다 잦았다는 뜻이다. 이사회를 형식적인 절차에서 실제 논의의 장으로 바꾸려는 고민이 읽힌다.
물론 제도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임사외이사도 사외이사회도 아직 정관에는 없는, 내부 규정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의결 권한도 법적 책임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유롭게 질문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하며, 그 결과가 실제 경영에 얼마나 반영되느냐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는 반갑다. 좋은 기업은 좋은 리더를 만나는 행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마다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이사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