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주요 계열사에 선임사외이사 제도와 사외이사회를 도입했다.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위한 장치로 꼽힌다. 다만 국내 주요 그룹들은 이미 사외이사 의장 체제로 넘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완전한 분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방식을 선택했다.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로 대표이사 의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견제 기능을 보완하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회를 공식화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도 받는다.
◇선임사외이사 넘어 의장 분리로…달라진 재계 거버넌스 흐름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들의 대표 역할을 맡는다. 사외이사회 소집과 운영을 주도하고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이사회와 경영진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소통 창구이자 사외이사들의 독립적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4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를 시작으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동시에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회도 신설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등 주요 계열사로 제도를 확대했다.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국내 상당수 기업이 이미 도입한 제도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처럼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회사를 제외하면
삼성SDI·삼성SDS·
삼성중공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2024년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오히려 최근의 흐름은 선임사외이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선임사외이사 제도가 대표이사 의장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견제 기능을 보완하는 장치라면, 사외이사 의장은 이사회 독립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구조로 평가받는다.
실제 주요 그룹들의 움직임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SK그룹 역시 SK와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에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SK그룹은 2018년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후 사외이사 의장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상당수 계열사에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임사외이사가 의장 분리로 가는 과정의 중간 단계였던 셈이다.
LG그룹 역시 올해 이 흐름에 동참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주사인
LG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8년 만에 내려왔다. 빈자리는 사외이사가 메웠다. 이밖에 그룹 내 주요 상장사들이 모두 사외이사 의장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차그룹, 오너십은 유지하고 견제는 강화하고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 대부분에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배경에는 현대차그룹 특유의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SK나
LG와 달리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다.
SK와
LG가 지주사를 통해 그룹 전략을 조율하고, 이사회에 관여하는 것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사업회사 이사회 자체가 의사결정의 중심 무대다. 지주회사를 통한 별도의 통제 구조가 없는 만큼 사업회사 이사회가 갖는 의미도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이사회에 직접 몸담고 있다. 특히 현대차에서는 201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2020년부터는 이사회 의장도 겸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대표이사 의장 체제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선임사외이사 제도 도입은 이같은 고민의 결과물로 풀이된다.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사외이사 의장 체제로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차선책으로 다른 그룹과 비교하면 다소 뒤늦은 행보인 건 사실"이라며 "오너 경영의 이점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려는 절충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선임사외이사가 사외이사들과 경영진 간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고, 이를 바탕으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 보다 자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