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키움증권 독립이사이자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독립이사의 핵심 역할을 견제와 균형으로 정의했다.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략을 함께 고민하되 경영진과 대주주의 판단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는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기업 실무와 학계, 정책 분야를 거쳐 20년 가까이 여러 회사의 이사회를 경험했다. 현재
키움증권에서는 독립이사와 감사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이사회를 경영진이 이미 내린 결정을 추인하는 곳이 아니라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바라본다.
거버넌스에 대한 철학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독립이사 후보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으로도 이어졌다. 실제 선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김 교수는
고려아연 이사회에 참여했다면 회사의 장기 전략과 소재사업의 미래, 향후 거버넌스 구조까지 직접 논의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회장님이 결정했다"는 안건에 "내 역할 뭐냐" 반문

김 교수
(사진)는 독립이사를 최고경영자와 대주주에게 주어진 권한이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검증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독립이사가 경영에 직접 뛰어들어 경영진의 역할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독립이사는 경영진이 성과를 잘 낼 수 있도록 전략도 함께 만들고 그들을 감독해야 한다"며 "회사의 전체 이익과 주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계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진이 내린 의사결정에 독립이사가 계속 '좋습니다'라고 동의하는 순간 그것이 정말 맞는 결정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거 이사회에서는 투자 안건을 설명하던 실무진이 "회장님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당시 "그러면 이사회의 역할은 무엇이냐, 이사회가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고 했다.
이후 필요한 자료를 다시 받아 해당 투자가 회사의 장기 전략과 맞는지, 어떤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지, 현재 재무·사업 상황에서 적절한지를 검토했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의결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공영홈쇼핑 독립이사 경험도 비슷했다. 당시 서로 다른 정부 부처를 배경으로 한 이사들이 자신을 추천한 주주의 이해를 우선하면서 이사회 안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김 교수는 이들에게 특정 주주의 이해를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회사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룰 때 주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별도의 회식 자리까지 마련할 만큼 화합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사회 여러분은 소속사가 아닌 이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한다는 점을 주지하고 이사회는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후보 수락도 철학 따라…"지배구조 다뤄보고 싶었다"
이 같은 생각은
고려아연 독립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과정에서도 작용했다. 김 교수는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024년 10월 지인의 추천을 거쳐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의 독립이사 후보로 추천됐다.
이듬해 1월 임시주주총회에 처음 선임안이 상정됐으나 선임이 무산됐고 이후
영풍·MBK가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재편을 다시 추진하면서 김 교수도 독립이사 후보로 재차 이름을 올렸다.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회사의 이사 후보가 된다는 부담을 알고 있었지만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교수는 당시를 두고 "어차피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가서 정리를 하려는 것이라면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후보 수락의 배경에는 그가 오랫동안 가져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를 소유한 사람과 실제 경영을 맡는 사람은 반드시 같을 필요가 없고 회사의 성장을 이끌 역량을 갖춘 사람이 경영을 맡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신념을 기업에 첫발을 들였을 때부터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SK에 입사한 신입사원 시절 최종현 당시 회장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
SK그룹 회장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단순한 포부가 아니었다. 학문적으로 익혔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현실에서도 구현된다면 지분 소유와 관계없이 경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최고경영자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유를 누가 했느냐와 상관없이 경영은 회사를 성장시킬 역량이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공부했다"며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 회장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후계자를 키우고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가 거버넌스"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이사회에 실제로 참여했다면 이런 생각을 회사의 장기 전략과 함께 다뤄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연을 비롯한 소재사업이 디지털·AI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기존 사업만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지부터 살펴볼 계획이었다. 동시에 현재 경영진 이후의 후계구도와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 체계 역시 이사회가 고민할 사안으로 봤다.
김 교수는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과 그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비쳤다.
◇"어디서 문제 생길지 알아야 질문한다"…실무 경험 이사회로
그는
SK 계열 종합상사에서 기획 업무를 경험하고 삼성SDS에서 IT 컨설팅을 했다. 두 차례 창업과 기업 컨설팅도 경험했다. 이후 학계에서는 디지털 비즈니스모델 혁신과 지식경영 등을 연구해왔다.
그는 "투자를 결정했을 때 뒤에서 어디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예상할 수 없으면 질문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계의 투자라면 공급망 차질 가능성과 일정상 실행 가능성, 경제성을 함께 본다. IT 투자에서는 회사의 전략 방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운영 효율성이 실제로 얼마나 높아지는지, 새롭게 발생하는 리스크를 어떻게 보완할지를 묻는다는 설명이다.
현재
키움증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안건을 검토한다. 안건을 받으면 먼저 회사의 전체 전략과 사업구조 안에서 해당 의사결정이 갖는 의미를 파악한다. 이후 다른 회사 사례와 추가 자료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별도의 조사도 진행한다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안건을 이해하기 위한 판단 틀을 만든 뒤 사전에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전달한다.
이사회에서 찬성하더라도 검토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에는 조건이나 후속 과제를 제시하고 추후 다시 보고하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키움증권 이사회에 대해서는 독립이사의 의견을 의장이 흘려듣지 않고 경영진에 검토와 후속 보고를 지시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영진들도 이사진의 의견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독립이사의 조건도 이런 철학과 연결된다. 그는 특정 학문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산업과 회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 견제와 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외부 영향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의 판단을 대신하는 조직이 아니라 이를 더 나은 판단으로 만드는 다중의 지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CEO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각 이사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으로 채워주고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가도록 살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관계"라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