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을 이끌어왔던
롯데케미칼은 최근 수년 중국발 에틸렌 과잉생산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 최대 석유화학업체이자 에틸렌 최대 생산업체인 시노펙(Sinopec)은 어떤 의사결정기구를 두고 있을까.
시노펙 이사회는 중국 회사법에 따라 사외이사제도를 도입, 전체 이사의 3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꾸렸다. 이사회 외 감사기관인 감사회도 존재한다. 다만 대표적 중국 국영기업인 만큼 이사회의 실질적 독립성을 확보하기엔 어려운 구조다. 사외이사들도 정부 관료 출신 인사를 다수 둬 정부 정책과의 정합성을 높일 수 있도록 꾸렸다.
최근 수년 중국 석유화학업체들이 일제히 에틸렌 과잉생산 체제에 들어가 자급률을 크게 높인 데는 이런 당 위주의 기업 의사결정체제와 이어져 있다는 평이다.
◇롯데케미칼 이사회 '총수 책임경영 긍정적'…독립성 저해 요소도 롯데케미칼 이사회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필두로 사내이사 5명과 사외이사 6명 등 총 11명으로 이뤄져있다. 그룹 총수가 등기이사로서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핵심 축인 만큼 이사회 정원도 10명 이상으로 꽤 큰 규모를 유지 중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독립성이 다소 약화될 수 있는 대목도 엿보인다. 이훈기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까지 맡고 있으며 사외이사후보추천을 담당하는 사추위에 사내이사가 포함되는 등 이사진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이 저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직 온전한 이사회 중심 경영에 이르진 못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케미칼은 어두운 석유화학 업황 가운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 인수와 롯데건설 유상증자 지원 등으로 유동성이 말라버렸고 해당 의사결정의 중심엔 이사회가 있었다.
롯데케미칼의 주업인 석유화학 업황이 중국업체들에 치여 경쟁이 힘들어지고 있던 시기, 이사진들은 조단위 투자와 유상증자 참여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
롯데케미칼 이사회 내 경영진의 결정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진 이유였다.
◇시노펙 이사회, 당 통제 아래…석유화학업황 악화, 거대한 외생변수 중국 최대 석유화학업체 시노펙은 어떨까. 한국 석유화학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나프타분해설비(NCC)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2020년부터 빠른 속도로 증설에 나섰고 시노펙은 그 선봉에 있었다. 시노펙의 일련의 의사결정 역시 이사회보다는 정부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시노펙 이사회는 총 12명으로 구성돼있다. 사내이사 7명과 비상임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등이다. 중국 회사법에 따르면 모든 상장기업들은 최소 2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두며 이사회의 최소 3분의 1을 사외이사로 구성토록 하고 있다. 시노펙 역시 인원 총수의 딱 3분의 1을 사외이사로 두며 이를 가까스로 맞추고 있다.
사내이사는 마용성(Ma Yongsheng) 회장을 비롯해 중런(Zhong Ren) 비상임이사, 자오동(Zhao Dong) 사장, 리용린(Li Yonglin)·루량공(Lv Lianggong)·뉴슈안원(Niu Shuanwen)·완타오(Wan Tao)·위바오차이(Yu Baocai) 부사장 등이다. 자오동 사장과 중런 이사는 각각 또 다른 중국 대형 국영석유회사인 CNPC 및 시노켐 출신 인사다. 국유기업 주요 경영진 인사에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하기에 이런 크로스 인사가 가능한 일이다.
이 밖에 사외이사로는 쉬린(Xu Lin), 장시량(Zhang Xiliang), 류츠번베넷(Liu Tsz Bun Bennett), 장리잉(Zhang Liying)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쉬린 이사는 국가개발위원회 개발계획부 국장·중국도시개발센터 소장 등을 역임한 정부 관료 출신이고 장시량 이사는 환경 정책 학자, 류츠번베넷 이사는 회계·금융 전문가다. 장리잉 이사의 경우 중국 전력망 공사의 수석엔지니어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행정부 격)의 특별 정부 수당을 받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들 모두 기업 경영인이라거나 석유화학 부문의 전문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없다. 이는 중국 국영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임명할 때 기업 경영 경험보다는 정부 정책과의 정합성, 재무·환경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고려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국영기업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중국이 2001년 WTO 가입 이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일각에선 선진 지배구조를 들여오고자 했으나 이사회 독립성이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는다. 특히 시노펙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곳이란 점에서 국영기업 중에서도 전략적 방향과 주요 의사결정이 중국 공산당 및 SASAC(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
2020년 이후 중국의 석유화학기업들이 일제히 NCC를 증설해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을 5000만톤 이상으로 확대한 것은 이 같은 의사결정체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노펙의 이사회도 중국 공산당 및 SASAC의 정책과 지침을 준수해야 하며 자율적인 경영 의사결정보다 국유자산 관리 기조를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업체에게 닥친 시련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임이 중국 석유화학업체들의 이사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