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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분석 하만

인수 초부터 독립성 강조 '방향은 삼성' '운영은 하만'

[크로스보더]①음향 전문가가 이끌어온 미 기업…"자회사로 독립 운영됩니다" 선언

허인혜 기자

2025-08-06 13:56:07

"하만은 삼성의 자회사로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손영권 전 삼성전자 사장(현 하만 이사회 의장)이 이끄는 이사회의 감독을 받게 됩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하만 인터내셔널 인수 완료를 알리는 글을 통해 하만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지를 공표했다. 인수 소식이 처음으로 알려진 2016년 11월에도 하만은 현 경영진에 의해 운영되고, 삼성전자는 전장사업팀을 통해 하만의 경영진과 소통한다는 내용을 'Operating Structure and Leadership'을 통해 공식적으로 알렸다.

하만 인수 당시부터 '독립성'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 기업으로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존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인수 1년 후 발표된 하만의 보도자료에서도 삼성전자와 하만 각각의 역할과 협업을 강조했다.

하만은 여전히 현지 CEO를 별도로 둔 독립 조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인수 후 삼성전자의 인물이 포함된 새로운 이사회가 구축됐고 삼성전자의 리더십도 서서히 스며들었다. 방향성은 삼성, 운영은 하만이라는 이원적 의사결정 체계가 정착하게 됐다.

◇인수 전 하만, 창립자와 CEO가 끌어온 안정적 리더십

하만(Harman International Industries)은 시드니 하만과 버나드 카돈이 설립한 소규모 음향기기 제조사에서 출발했다. 시작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940~1950년대 출범한 장수 기업이다. JBL, AKG, 마크레빈슨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차례로 인수하며 오디오 업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중간에 잠시 창립자가 정계에 입문하며 위기가 있었지만 1985년 리더가 복귀하며 다시 오디오 사업에 집중했다.

2000년대부터 하만은 기업의 수명을 늘릴 신사업에 집중했다. 삼성전자 등 IT 제조사와 협력했고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눈을 떴다. 삼성전자의 노트북에 하만의 스피커가 장착됐다. 국내에서는 2006년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선보일 때 하만의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롤스로이스에만 적용되는 최고급 시스템이었다.
2016년 11월 한국을 찾은 디네쉬 팔리윌 전 하만 CEO가 삼성전자와의 협력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오랜기간 하만을 이끌어 왔고 하만 박사와도 연이 있었던 디네시 팔리윌(Dinesh Paliwal) 전 하만 CEO는 하만을 커넥티드카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시킨다. 음향 전문가인 팔리윌 전 CEO는 2007년 하만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하만의 사업을 끌어왔다.

2016년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할 때 이미 하만 매출의 65%가 자동차 전장 부문에서 나오게 됐다. 커넥티드카와 카오디오 사업은 연 매출의 6배 수준인 240억달러 규모의 수주 잔고도 보유했다. 프리미엄카 10대 중 3대 이상이 하만의 오디오를 선택했다.

삼성전자의 인수 전 하만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독립 기업이었다. 하만의 2017년 1월 내놓은 삼성전자와의 합병 관련 공시를 보면 하만이 단일이사회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하만은 이사회가 합병계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인수합병이 회사와 주주에게 최선의 이익을 줄 것에도 동의했다고 적었다.

또 팔리윌 전 CEO는 회장이며 최고경영자이자 사장으로서 최종 승인을 내렸다. 10년간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며 의사결정을 진두지휘해 온 인물이다. 하만은 커넥티드 카로 신사업 지평을 열었지만 연구개발과 생산설비에 대한 부담감도 느껴온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성장 가속화를 위해 전략적 파트너 모색에 나선다.

하만이 밝힌 합병 추진 배경을 보면 하만은 삼성전자와의 계약 전 모종의 회사와도 사업결합을 논의해온 것으로 추측된다. 2016년 2월 이 계약이 중도 파기됐는데 같은 해 8월 업계 컨퍼런스 행사에서 손영권 전 사장과 하만 경영진의 만남이 성사된다. 전장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로서도 이 분야에 오래 몸담은 하만이 필요했다.
7년 발표한 합병 관련 주주 대상 공시 문서 중.
◇삼성 인수와 NYSE 상장폐지, '단일 주주'로의 지배구조 전환

삼성전자의 인수 전 하만은 NYSE 상장사로 당연히 다수 주주와 주주를 대변하는 이사회의 지배 아래 있었다. 삼성전자가 하만의 지분 100%를 80억달러(당시 9조34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하만은 단일 주주의 품에 안긴다. 인수 후 기존 주주들의 주주권은 합병 대가를 받을 권리로 전환됐다.

미국 삼성전자(SEA)가 100% 보유한 법인 Silk를 하만이 흡수합병해 Silk 주식이 하만 주식으로 전환되고 하만은 SEA의 자회사가 되는 방식이었다. 삼성전자로서도 국내 기업으로서도 최대 규모의 해외 M&A였다.

이사회 구조도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인수 이후 하만이 손영권 전 사장이 이끄는 이사회의 지배를 받는다고 적었다. 최고전략책임자(CMO)가 의장으로 있는 이사회로 삼성전자의 전략적 지배력이 하만에 투영되는 체계였다.

하만의 현지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됐다. 팔리왈 전 CEO가 여전히 하만의 CEO 자리를 지켰다. 주요 경영진도 유임됐다. 인수 시점 하만의 실적이 양호했던 만큼 현지 경영진들의 능력과 현지 비즈니스를 존중한 결정인 것으로 보인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팔리왈 전 CEO를 '검증된 글로벌 리더'라고 호평하고 경영진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임직원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지배력 확보는 법적·재무적 구조에도 반영됐다. 하만은 삼성 연결 재무제표에 편입됐다. 전장, 오디오 등 주요 사업부는 기존 체제를 유지했지만 전략·투자 의사결정은 삼성 본사 승인 체계로 이동했다. 법적 주체는 삼성의 100% 자회사지만 사업 운영은 독립 브랜드로 존속됐다.

◇두 번의 CEO 변화, 점점 더 삼성전자의 품으로

팔리윌 전 CEO는 2020년 수장직에서 물러난다. 팔리윌 전 CEO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매출을 29억달러에서 88억달러까지 늘리고 전장사업 수주 잔고는 80억달러에서 290억달러까지 확대시켰다.

팔리윌 전 CEO의 뒤는 마이클 마우저 전 CEO가 잇는다. 마우저 전 CEO 역시 선임 당시 하만에 22년간 몸담았던 '하만맨'이었다. 재무조직에서 출발해 커넥티드카 사업부의 공동 사장이 됐다. 이후 하만의 라이프스타일 오디오 사업부 사장을 역임한 후 C레벨에 올랐다.

마우저 전 CEO가 선임될 때도 삼성전자가 하만의 리더십에 큰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하만의 경영 스타일을 유지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손영권 전 사장도 마우저 전 CEO가 강력한 운영 기술과 비즈니스 비전을 갖춘 입증된 리더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이사회가 신임을 보냈다는 뜻이다. 팔리윌 전 CEO는 퇴임 후에도 한동안 고문 자격으로 리더십을 유지한다.

올해 3월 하만은 5년 만에 CEO를 교체했다. 크리스티안 소봇카 신임 CEO(사진)다. 소봇카 CEO는 비교적 최근 하만에 몸담은 외부영입 인사다. 2021년 1월 하만에 합류해 전장 사업을 이끌었다. 이전에는 보쉬 등에서 일했다. 손영권 전 사장이자 하만 이사회 의장은 소봇카 CEO를 두고 '하만을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이상적인 리더'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