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는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사고가 다수 발생하는 공기업으로 꼽힌다. 수년 동안 사망사고가 이어지는 추세다. 문제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산업재해를 두고 정부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평가에서 산재 관련 항목의 배점을 늘리고 중대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은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한국도로공사의 안전경영 체계에도 이목이 쏠린다. 한국도로공사의 안전경영 체계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보건예산 자체는 늘었지만 산재 예방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분야에서는 예산집행률이 떨어지고 안전 전담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도 안전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안전투자, 핵심 현장엔 미치지 못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공공기관 중대재해를 향해 강력한 제재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안전경영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기관장 책임을 법제화하고 중대재해 발생에 책임있는 기관장은 해임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기관장의 안전경영책임을 평가의 주요사항으로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경영관리 부문의 ‘안전 및 재난관리 지표’ 중 산재 예방 분야 배점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안전 관련 가점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구 부총리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만큼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의 중요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국도로공사가 여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도로공사는 2020년 4등급에서 2022년 2등급으로 평가를 개선했지만 지난해 실적을
대상으로 한 이번 평가에서 3등급으로 점수가 오히려 떨어졌다.
중대재해 사망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2024년 산재 사망자는 모두 4명이다. 전년 6명이었던 점에 비하면 줄었지만 전체 공공기관을 놓고 봤을 때 적은 편이 아니다. 전체 공공기관 중 2위에 해당한다. 올해도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한국도로공사의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이나 전체 경영평가 등 점수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실상 한국도로공사가 안전과 관련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안전투자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안전보건 분야에 투입한 예산은 지난해 1조7005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예산이 주로 투입된 분야는 노후 시설물 안정성 강화, 재해 예방을 위한 SOC 관리 분야다.
그러나 노동자의 산재 예방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안전 관련 교육·훈련·홍보 분야 예산은 당초 94억원 배정됐지만 실제 72억원 집행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 평가에서 “근로자 안전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안전관련 교육·훈련·홍보 예산의 집행률이 76.8%로 다소 낮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면회의·인력부족…이사회 통제도 '미미' 표면상 한국도로공사에서 안전경영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기술부사장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일찍부터 안전관리책임자로 부사장을 지정해왔는데 2023년 기술부사장 직제가 신설된 이후부터 그가 안전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술부사장은 한국도로공사 이사회의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CSO(최고안전책임자)가 고위급 임원인 데다 이사회에서 의결권도 행사하는 셈이다.
그러나 기술부사장이 안전경영을 중점적으로 관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경영까지 책임지고 있는 데다 주력업무는 도로본부장으로서 역할이라서다. 기술부사장 직할 조직으로는 안전혁신처 외에 도로본부, 교통본부, 건설본부, 신사업본부 등이 있다.
실제로 안전경영 정책을 총괄하는 실질적 주도자는 대표이사인 것으로 파악된다. 임원 안전활동 빈도만 살펴봐도 CEO가 2023년 25회, 2024년 44회 활동을 진행했지만 기술부사장은 같은 기간 16회, 32회로 적었다.
한국도로공사의 안전 전담 조직으로는 기술부사장 직할 안전혁신처가 있다. 안전혁신처는 2020년 설립된 조직으로 산하에 안전계획팀, 안전조사팀, 안전기술팀으로 나뉘어 중대재해예방, 안전교육 및 점검 등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인력이 충분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에도 정원 대비 표준정원이 적어 인력 부족 우려가 컸는데 지난해 여기에서 직원이 한 명 더 나갔다.
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및 근로협의체, 안전경영위원회를 꾸려 안전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
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 평가는 “회의 대부분이 서면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근로협의체 안건 발굴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산재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사회 내에 안전이나 산재 관련 소위원회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ESG위원회나 철도안전소위원회를 꾸려 운영하는
한국전력공사나 한국철도공사 등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