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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보드 리빌딩

금융지주·소유분산 기업, 이사회 변화에 집중

③금융지주는 주가 상승, KT&G는 집중투표제 도입…리소스 분산 지적도

허인혜 기자

2025-12-24 10:44:54

편집자주

엘리엇의 삼성 지배구조 공격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변화 요구가 본격화한 지 수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국내 기업 대상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개조 시도가 어떤 효과를 내는 지에 대한 데이터도 축적됐다. 케이스 분석을 통해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때 결과가 단기 주가 상승이나 주주환원 이벤트로 끝났는지, 아니면 이사회의 선진화와 견제 기능 강화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 파트너십을 내세웠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곧 철수했는지, 아니면 장기적인 관계로 기업의 체질적 변화를 이뤘는지 추적한다.
절대적인 오너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은 특정 주주가 의결권을 독점하기 어렵다. 주주간 지분 격차가 제한적인 만큼 다양한 투자자 의견이 상대적으로 잘 전달된다. 기업과 투자자는 물론 투자자 각자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자연스럽게 견제 구도를 구축한다.

연장선상에서 보면 행동주의 펀드가 규제산업과 소유분산 기업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안을 두고 맞붙을 오너가 뚜렷하지 않거나 주요 주주의 지분이 당락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승산이 있다. 법리로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누르고 있는 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최대주주가 분산된 구조에서는 누가 이사회를 설계하고 그 이사회는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도 이 부분이다. 여파로 주가 상승과 리스크 관리 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금융지주 최초의 주주추천 사외이사 탄생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2022년 5월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이 보유한 JB금융지주의 지분 14%를 2480억원에 인수하며 2대주주에 등극한다. JB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삼양사의 지분은 당시 14.61%였다.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는 최대주주의 지방금융지주 지분 소유 한도는 15%다.

이듬해인 2023년 1월 얼라인은 곧바로 주주 행동에 들어간다. JB금융과 함께 국내 7대 상장 은행지주사를 상대로 했다. 주주환원책이 골자다. JB금융에 대해서는 한발 더 나아갔다. 2차는 사외이사 추가 선임이었다.

얼라인은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AML) 출신의 김기석 후보를 추천했다. JB금융은 수용하지 않았다. ISS·글래스루이스 등 주요 의결권 자문기관도 주주제안에 반대했다. 2023년 3월 주총에서는 JB금융이 표대결에서 승리했다.

2024년 JB금융은 얼라인과 3대 주주 OK저축은행의 사외이사 추천을 받아들인다. 이명상 법무법인 지안 변호사와 이희승 리딩에이스캐피탈 이사다. 하지만 사외이사의 수를 두고 다시 한번 격돌한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에 비상임이사 1인 증원과 비상임이사 1인·사외이사 3인 선임에 관한 주주제안을 제출했다. 이번에는 얼라인의 판정승이었다. 주총에서 김기석 후보가 표 대결에서 1위, 주주 추천된 이희승 후보가 2위로 이사회에 진입한다.

그래픽=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얼라인, 7대 금융지주와 맞붙어 남긴 건

얼라인의 금융지주 캠페인은 JB금융지주 한 곳에서 시작된 이벤트가 아니었다. 우리금융 지분 1%, DGB금융은 지분 1%에 해당하는 의결권 위임, KB금융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도 각각 일부 지분을 보유했다.

금융지주사들은 자본 배치와 건전성 관리 원칙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됐다. 또 외부 투자자의 이사회 진입 경험이 없었던 이들이 긴장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김기석 사외이사는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로 주주추천으로 선임됐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2023년 7개 금융지주사에 공개주주서한을 발송한 이후 모든 금융지주사가 지속가능한 자본배치정책을 발표하고 실제로 약속을 지켰다"며 "이후 약 3년이 흘렀으며, 그간 7개 금융지주사 평균적으로 100% 이상 주가가 상승하는 등 뛰어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지주사들의 주가가 행동주의 펀드 활동 하나만으로 상승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금리 환경, 대손비용, 건전성 규제, 밸류업 정책 등 업종 공통 요인도 작용해서다. 또 다른 지주사와 마찬가지로 주가 디스카운트가 심한 업종으로 최근 법 개정 흐름의 영향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FCP, KT&G 이사회 진입·선임 룰 흔들기

KT&G와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사례는 독특한 소유구조 아래에서 행동주의가 어떻게 이사회를 흔드는 지를 보여준 사례다. FCP는 2022년부터 KT&G를 상대로 담배 사업과 인삼(KGC) 사업 분리, CEO 선임 구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2024년 정기주총 국면에서 FCP는 단독 표 대결 대신 국책은행 IBK기업은행과 맞손을 잡았다. 기업은행이 최대주주 약 8%대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방경만 사장 후보 선임에 반대하고, 이사회 전문성·독립성 강화를 위한 주주제안을 내놨다. FCP는 자신들이 제안했던 사외이사 후보를 철회하는 대신 기업은행 후보 손동환 성균관대 교수를 지지했다.

주총 표대결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손 후보자의 이사회 입성 여부와 함께 방경만 당시 후보의 선임이었다. '통합집중투표제'라는 익숙하지 않은 투표방식이 사용돼 전망이 안갯속이었다. 1주당 1표의 의결권이 아니라 선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부여했다. 후보 3인 중 2인의 선임이었기 때문에 주당 2표가 부여되고, 이 표를 선호하는 후보 한 명에게 모두 몰아줄 수 있었다.

통합집중투표제는 FCP의 요구로 반영됐다. 이사회 진입 성패와 관계 없이 새로운 이사 멤버 선임의 룰을 관철시키고 이 변화가 차기 대표의 인선 예측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다.

KT&G는 2025년 주총에서 '집중투표제에 따라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대표이사 사장과 그 외의 이사를 구분한다'는 조항 신설 안건을 내놨다. 주주들이 손을 들어주면서 집중투표제의 영향력은 줄었다.


◇행동주의 공세·경영진 방어 다툼에 리소스는 분산

끊임없는 공세전에 경영 리소스가 분산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주환원이나 경영진, 이사 후보의 정합성뿐 아니라 이사회의 의안 결정에 대한 소송도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법리적 다툼은 순기능도 있었으나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며 수년간 리스크관리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기도 했다.

FCP는 2025년 1월 전직 임원 21명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쟁점은 과거 KT&G 이사회가 2002년부터 17년간 자사주 1085만주를 산하 재단, 사내복지근로기금 등에 무상 또는 저가로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FCP는 당시 KT&G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액이 최대 1조원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KT&G는 처분 자사주의 상당 부분이 직원이 직접 출연하는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유상출연 등에 해당한다며 저가 기부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이사회 결의와 공시 등 법령상 절차도 준수했다고 반박했다.

별도로 KT&G는 2024년 1월 대전지방법원이 아그네스가 신청한 이사회 의사록 열람·등사 가처분을 기각했다고 공시했다. 회계장부 열람도 일부 범위만 인용되고 대부분 기각됐다는 설명이다. FCP는 필립모리스와의 해외 판매 계약 연장 조건 등을 요구했으나 KT&G는 비밀유지 의무 등을 이유로 주주 공동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맞섰다.

시장에서는 소송 국면이 길어질수록 옳고 그름과 별개로 이슈가 상시화되고 경영진의 역량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을 겪었던 기업 관계자는 "오너 기업과 소유분산 기업을 가리지 않고 행동주의 펀드의 굵직한 행보가 잦아졌다"며 "올해와 내년에도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긴장감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