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삼성 지배구조 공격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변화 요구가 본격화한 지 수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국내 기업 대상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개조 시도가 어떤 효과를 내는 지에 대한 데이터도 축적됐다. 케이스 분석을 통해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때 결과가 단기 주가 상승이나 주주환원 이벤트로 끝났는지, 아니면 이사회의 선진화와 견제 기능 강화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 파트너십을 내세웠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곧 철수했는지, 아니면 장기적인 관계로 기업의 체질적 변화를 이뤘는지 추적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행동주의의 최종 목표로 기업의 가치 상승과 그에 따른 투자자들의 수익을 꼽는다. 그러니 행동주의 펀드가 꼭 피투자기업의 거버넌스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숙명에 놓인 것은 아니다. 되도록 기업의 체질적 변화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어 엑시트를 하면 성공한 투자라고 본다.
행동주의 펀드에게 기업 선진화를 선행하는 목표는 당연히 수익률이다. 행동주의 펀드들도 먹고 튀었다(Eat and Run)는 비판을 받을 때 '펀드매니저의 성적표는 수익률'이라는 말로 변호를 대신한다.
하지만 구호와 속내가 다르다는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례들도 눈에 띈다. 거버넌스 선진화라는 목표를 걸고 주주행동에 나서 경영권을 흔든 뒤 단기에 수익을 얻고 빠져나가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또 다른 오너 가족과 협업해 그 당위성에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다. 주요 행동주의 플레이어들은 단기 투자가 나쁘다는 평가에 대해 경계했지만 지배구조 개선 등 다소 시간이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지배구조 저격, '로빈후드와 단타' 엇갈린 평가
수익률로 보면 KCGI의 행동주의 사례들은 성공한 투자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공개매수 참여로 IRR(내부수익률) 139%를 달성했다. DB하이텍과 한진칼 투자로도 쏠쏠한 수익을 냈다.
그래픽=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KCGI는 주주행동의 배경으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개선을 제시했다. '펀드매니저의 성적표는 곧 수익률로 증명된다'는 말로만 변호를 하기엔 스스로 내건 행동주의의 명목이 지켜지지 못한 사례도 있다. 경영참여를 선언했지만 수익은 얻고 지배구조 개선은 매듭짓지 않은 채로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시장 평가가 갈린다. KCGI의 최우선 가치가 투자자의 수익인 만큼 당연한 선택이고 피투자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의무까지는 없다는 옹호가 나왔다. 주주행동으로 경영권을 흔들어 주가 상승을 노리고 수익만 얻은 뒤 떠났다는 반대쪽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또 KCGI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거쳐온 기업들이 결국 지배구조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오스템임플란트와 DB하이텍의 경우 투자 기간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KCGI는 2023년 3월 DB하이텍 지분 약 7.05%를 매입하며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같은 해 12월 말 지배구조 개선을 이뤘다며 5.63% 지분을 DB하이텍 모회사 DB Inc에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매각했다. 사실상 경영권 분쟁으로 밀어올려졌던 주가는 급락했고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고의로 경영권을 위협해 단기 차익을 얻고 소액주주들에게는 손실을 남겼다는 취지다.
오스템임플란트는 퇴각이 더 빨랐다. 2022년 12월 지분을 사들이고 2023년 1월 주주서한과 함께 주주행동에 나선다.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등을 주문했다. 2월 MBK파트너스와 UCK(유니슨캐피탈코리아)의 SPC가 추진한 공개매수에 응한다. 행동에 나선 지 한달만에 지분을 털어낸 셈이다. 기간보다는 서사의 단절이 문제로 지적됐다.
◇4년을 투자해도 '분쟁 프리미엄', 전문 경영인 주장했지만
수년간 주주행동을 한다고 해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꼭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 행동주의에서 요구하는 지배구조 개선이 꼭 더 나은 방향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오너 가문간의 다툼 속 행동주의와 합심한 가족이 더 선진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문 경영인을 앞세웠더라도 표를 얻지 못했다면 주주 설득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한진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KCGI는 수년간 한진칼에 주주행동을 펼쳤다. 제3자연합을 구축할 만큼 무척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조원태 회장의 완승이다. 조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할 점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KCGI가 목표한 거버넌스 교체는 실현되지 못했다.
델타항공 등 주요 주주가 한진칼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2019년에는 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라며 한진칼을 압박했지만 2020년에는 조원태 회장의 연임에 찬성한다. 카카오와 GS칼텍스도 주요 백기사로 언급됐다. KCGI는 떠나며 '한진그룹이 현재 장기 성장을 위한 도약대에 올라섰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주가는 올랐지만 되돌아갔다.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KCGI는 2018년 한진칼 지분 9%를 취득하며 등장했다. 3자연합은 행동주의 영향력을 키웠으나 기업 개선보다는 경영권 분쟁에 가까웠다. 2022년 정기 주총에서 KCGI의 안건이 부결됐고 KCGI는 4년 만에 보유지분을 매각한다. 주가는 한진칼과 KCGI의 경영권 분쟁 흐름에 따라갔다. KCGI는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더 차가운 해외 행동주의, 기업가치 상승은 전략일 뿐일까
엘리엇과 소버린 등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주주행동을 펼쳤던 글로벌 행동주의들의 계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모두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환원 등 기업 밸류업을 무기로 내걸었지만 해외 자본이라는 특성상 시장의 시선이 더 날카로웠다.
거버넌스 개선은 명목일 뿐 결국 경영권을 흔들어 주가를 올리고 단기 차익을 꾀한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그 속내를 꺼내어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 결론을 맺은 투자 행태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내 기업들의 착각은 아닌 것이 기업사냥이라는 수식어는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지 않았다.
최근 LG화학에 주주행동을 시작한 영국계 행동주의 팰리서캐피털은 엘리엇 출신의 제임스 스미스가 출범시켰다. LG화학에 앞서 SK스퀘어와 삼성물산에도 목소리를 냈다. 대부분 비슷한 지적이다. 주식이 저평가돼 있고 주주들에게 환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대책을 세우라는 게 요지다. LG화학도 주가가 순자산가치(NAV) 대비 74% 할인된 수준에 그친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다만 팰리서캐피털의 요구를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빠른 수익을 위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SK스퀘어 투자 전례 때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팰리서캐피털이 SK스퀘어의 주요 주주로 언급된 것은 2024년 10월이다. 2년간 지분을 취득해 1% 이상 주주가 됐고 주주제안을 했다. 11월 SK스퀘어가 기업가치제고 계획을 내놓자 호평했지만 같은해 말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