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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이사회도 AI 지각변동…사외이사에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은

윤윤진 현대글로비스·GS리테일 사외이사 "질문에 질문을 거듭할 수 있어야"

이돈섭 기자

2026-07-07 15:07:29

최근 기업 이사회 화두 중 하나는 생성형 인공지능(AI)다. 이사회 안건을 검토하면서 해외 사례를 찾고 경쟁사 전략을 비교하거나 법률 자문을 보완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부 기업은 AI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관련 스터디를 운영하는 등 이사회 차원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이사회 업무 자동화 수준을 넘어 이사회 경영 인프라 자체까지 바꿀 것이란 시각은 많지 않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건설및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윤윤진 현대글로비스·GS리테일 사외이사(사진)는 AI를 새로운 '경영 인프라'라고 정의했다. 기업 전략과 운영, 이사회 감독 기능을 모두 아우르는 기반이 될 것이란 뜻이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 전산학·경영공학 석사를 거쳐 UC버클리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윤 사외이사는 건설·환경 통합 분야 여성 교수 1호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AI 전문가인 윤 사외이사가 이사회 내 AI 활용에 보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사외이사에 요구되는 비밀유지 의무와 선관주의 의무를 고려해 오랜기간 이사회 업무에 AI를 사용하지 않았다. AI에 입력한 이사회 중요 정보들이 다른 이용자에게 그대로 노출되지는 않더라도 모델 학습 과정에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사회 안건과 회의록, 미공개 논의 내용은 AI와 공유하지 않고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현대글로비스 이사회가 상법 개정을 계기로 기존 투명경영위원회를 독립이사위원회로 재편하면서 이사회 업무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하는 해당 위원회에서는 이사회 안건을 사전에 검토하고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은 뒤 추가 자료를 조사해 다시 논의한다. 과거보다 스스로 조사하고 검증해야 하는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 이사회 조직 개편이 AI 도입을 촉진한 셈이다.
[이미지=윤윤진 사외이사 제공]
윤 사외이사는 AI에 판단을 맡기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경쟁사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다른 산업에선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지정학적 변수나 규제 변화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슈를 파고든다. 윤 사외이사는 "AI는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라며 "글로벌 톱 수준 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해외에선 어떤 사례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재료를 더 많이 가져오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가 AI를 활용할 땐 객관성을 더 의식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AI는 이용자 성향과 대화 방식을 학습해 답변을 맞춤형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사회처럼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 사외이사는 "이사회 안건은 질문하는 사람의 성향이 반영되면 안 된다"라며 "평소 사용하는 방식 그대로 AI를 활용하면 내 생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답이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윤 사외이사가 이사회 다양성 확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이사회 안건에 대해 거버넌스 전문가는 거버넌스 관점에서, 회계 전문가는 회계 관점에서 질문함으로써 각 이사들이 전문 분야 내 자기 의견을 정교하게 다듬고 이를 이사회에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양성이 갖춰져야 AI 활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AI 효과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다양성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윤 사외이사는 "AI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사 개인이 AI라는 코파일럿을 데리고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다"라며 "AI 시대일수록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사회가 훨씬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I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사회 차원에서 AI 기술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기업 차원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직문화 역시 AI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회사를 하나의 학습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AI를 통해 조직 전체 학습 속도와 의사결정 역량을 높이려는 시도다. 윤 사외이사는 "기업 경쟁력은 시장과 고객, 운영 현장에서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빠르게 실행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AI 도입으로 조직 연결성과 학습 능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전용 AI 에이전트 등장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봤다. 영국 로이즈(Lloyds) 뱅킹 그룹은 이사회 지원용 '보드봇(Board Bot)'을 도입해 과거 사례를 분석하고 질문을 생성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모든 기업이 챗GPT나 클로드 같은 대규모 범용모델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내부 데이터만 활용하는 스몰랭귀지 모델(SLM)을 구축하는 편이 빅테크 LLM 모델을 활용하는 것보다 비용과 보안 측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윤 사외이사는 향후 사외이사 역할 자체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 내 질문의 수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윤 사외이사는 "이사회가 AI 기능을 도입했는지 여부보다 AI를 통해 기업이 더 잘 배우고 더 잘 운영되고 있는가를 주의깊게 봐야 한다"면서 "좋은 사외이사는 AI가 내놓는 답을 단순 인용하는 이가 아니라 그 답에 다시 질문을 던져 결론을 낼 수 있는 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