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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박태진 전 JP모건 한국 회장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

아모레퍼시픽·SK케미칼 사외이사 합류…자본시장 경험 살려 책임보험 개정 등 전방위 활약

이돈섭 기자

2026-06-24 14:26:14

글로벌 투자자들이 보기에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 수준은 어떨까. 글로벌 금융시장 관점으로 국내 기업을 지켜보다가 이사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기업 안으로 들어온 박태진 전 JP모건 한국 회장 겸 아태지역 부회장(사진)은 최근 더벨과 만나 "기업들은 시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기업 성장을 돕는 파트너 역할로서 사외이사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자체보다 이사 개인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박 사외이사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대부와도 같은 인물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 사외이사는 도이치증권 서울지점장을 거쳐 2001년 JP모건에 합류, JP모건 한국회장 겸 아태지역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2024년 말JP모건을 떠난 그 이듬해 아모레퍼시픽SK케미칼 이사회에 합류, 사외이사 커리어를 시작했다. 두 회사는 글로벌 자본시장 경험과 리스크 관리 역량 등을 높이 평가했다.


JP모건 근무 당시 주력 업무 중 하나는 국내 시장 다양한 이슈를 분석해 본사 측에 공유하고 관련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수립하는 것이었다. 개별 기업들에게는 이사회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글로벌 시장 기대치에 맞춰 거버넌스를 개선하도록 독려했다. 기업 사외이사도 직접 만나 그들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기업 거버넌스 변천사를 오랜기간 지켜봐온 셈이다.

박 사외이사는 "기업에 이슈가 발생했을 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석하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거버넌스 중요성을 체감했다"며 "기업 안에 들어와 보니 이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P모건이 꾸준히 성장해 왔는데 금융회사가 성장하는 건 리스크 관리를 잘 한다는 의미"라면서 "그 시스템을 체득해 온 것이 이사회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 사외이사가 몸담고 있는 SK케미칼과 아모레퍼시픽 이사회는 비교적 신중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케미칼은 최창원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SK디스커버리 계열 내 핵심 중간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고 아모레퍼시픽은 그룹 주력 계열사로 오랜 업력을 자랑하고 있다. 각 그룹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시장 내 영향력 등을 감안했을 때 이사회가 리스크 관리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사외이사는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가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경영진이 이사회를 외부 의견을 청취하는 창구로 적극 활용해야 하고 이사회 멤버는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다양한 이슈를 미리 짚어 내야 한다"면서 "특히 사외이사가 기업 성장 파트너로서 자기 역할을 하려면 시간을 추가적으로 할애해 경영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수집해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4년 이사회 활동을 개시한 이후 임원배상책임보험(D&O) 약관을 직접 검토하고 감독당국 제재 관련 면책 범위를 조정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 책임 범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사위원회 운영 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여 사외이사 중심의 운영 내용을 공시 문구와 보고 체계 등이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문구를 손보기도 했다.

자본시장 전문성도 한껏 살리고 있다. SK케미칼은 작년 한해 교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박 사외이사는 "자금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변수들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조건을 바꾸면 다른 조건도 영향을 받는다"면서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투자자와 만나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사외이사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은 국내 기업들의 거버넌스 개선 노력이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박 사외이사는 "밖에서 볼 때보다 기업들이 ESG나 내부통제, 리스크 관리에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특히 글로벌 경쟁기업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각 기업 실무 담당자들과 스킨십을 확대하면서 업무를 독려하는 것 역시 그만의 관심 표현 방식이다.

이사회 제도보다 이사 개인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 구축도 중요하지만 이사회 기능의 실질적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이사 개인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사외이사는 "기업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시장에 존재하고 있는데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라면서 "기업이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차원에서 박 사외이사는 관료나 학계 중심 인선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 현장에서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를 경험한 인재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외이사 임기와 겸임 등을 제한하는 작금의 제도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박 사외이사는 "이사회도 결국 경험의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개인이 현장에서 장기간 쌓아온 경험치가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