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15% 이상을 확보하면서 KAI 이사회 진출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5월 KAI 지분이 5%를 넘어서자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한 데 이어 최근 지분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신고 기준선까지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한화가 2대주주 지위를 바탕으로 KAI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화그룹이 KAI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면서 삼성테크윈이 당시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 10%를 승계해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은 이후 2016년 초 지분 4.01%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고 2018년 7월 잔여 지분 5.99%도 처분했다. 삼성테크윈의 후신이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신인 한화테크윈을 통해 3년여 동안 KAI 지분을 보유해 온 셈이다.
KAI 지분을 보유하던 당시에는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김영한 당시 한화테크윈 재무실장이 KAI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한화디펜스를 비롯해 한화그룹의 다양한 계열사 감사를 겸임했던 김 당시 이사는 KAI 경영 현안을 점검하고 한화와 KAI 양사 간 소통 창구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 당시 이사는 한화테크윈이 2016년 지분 일부를 매각한 뒤에도 일정 기간 이사회에 남아 주주 견제 역할을 이어갔다.
한화그룹이 지분을 줄여나가던 시기 KAI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으로 바뀌었다. 기존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있던 산업은행이 수출입은행 자본건전성 보강을 위해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1조6700억원 규모 KAI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했다. 그 결과 수출입은행 KAI 지분은 7.74%에서 26.41%로 확대했다. 수출입은행은 이때 이후 현재까지 줄곧 해당 지분을 바탕으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KAI의 공공적 성격은 이사회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과 독립이사 5명 등 총 8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독립이사진에는 수출입은행 부행장 출신인 홍순영 이사와 교육부 차관보를 지낸 이상원 이사, 방위사업청 법무팀 변호사 출신인 이태영 이사 등 정부 측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국책은행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지배구조가 이사회 인선에도 반영되고 있다.
챗GPT 생성 이미지
일각에서는 KAI 이사회의 전문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독립이사들이 정책적 전문성은 갖췄을지 몰라도 기업 자본배분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다. 실제 KAI는 안정적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년간 매출 성장이 정체돼 있고 재고자산과 계약자산 등 운전자본 부담이 큰 데 비해 보유자산을 활용한 성장동력 확보 움직임도 뚜렷하지 않다.
한화그룹의 KAI 지분 매입은 거버넌스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등 복수의 계열사를 통해 KAI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해 최근 그룹 합산 보유 지분을 15.89%까지 확대했다. 지난 5월 지분 5% 이상을 취득했을 때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했고 지난 11일에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도 마쳐 놓은 상태다.
시장에서는 한화그룹이 정부 측과 사전 교감했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KAI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했을 때 한화그룹이 지분을 매입하더라도 정부 동의 없이 경영권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국정과제로 정하고 방산 연구개발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한화그룹의 KAI 지분 인수가 정부의 방산 역량 강화 정책 큰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한화그룹이 향후 수출입은행 지분을 매입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지분을 매입하지 않더라도 경영에 깊게 관여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이 경우 한화그룹의 KAI 이사회 진출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한화그룹이 사업적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지분을 매입하고 있고 10여 년 전 지분 10% 미만을 보유한 상황에서도 이사회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점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록히드마틴과 같은 대형 방산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져 왔다"며 "최근 해외 수주 성과 등을 봐도 한화 쪽에 다소 무게가 실린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KAI 민영화 작업은 정부 정책과 방산업계 구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에 신고 결과와 정책 방향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사회 참여 방식으로는 그룹 측 인사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독립이사를 추천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 경우 그룹의 입장을 온전히 이사회에 전달하는 데 제한이 따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사회 참여 시 KAI의 자본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한화 관계자는 "KAI 지분 인수 관련 정부와 사전 교감은 없었다"면서 "이사회 참여 역시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