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이사회제와 이원이사회제의 가장 큰 차이는 경영진 구성 방식이다. 단일이사회제에서는 대표이사가 이사회의 의장을 겸하며 전략의 수립부터 의결까지를 '원스톱'으로 지휘할 수 있지만 이원이사회제에서는 경영과 감사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런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기업이
현대차그룹과 BMW, 폭스바겐이다.
현대차그룹은 익히 알려진 대로 정의선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다. 회사 역시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사업보고서를 통해 발빠른 리스크 대처와 전략 운영을 위해 대표이사가 의장을 맡는 것이 필요했다고 명시했다.
BMW와 폭스바겐은 전문 경영인으로만 집행이사회(Vorstand)를 운용한다. 각 그룹의 지주사 주주구성을 보면 독일의 산업 명문가들이 지배주주로 등재돼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다만 독일식 제도를 따른다고 해서 경영진이 완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너일가와 감독위원회 아래 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가 숨어있다.
◇내·외부 두루 기용하는 폭스바겐, 'BMW맨' 중심인 BMW
폭스바겐과 BMW는 독일 기업으로서 법제화된 이원이사회제를 따른다. 이원이사회제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경영을 담당하는 집행이사회와 견제 역할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로 이사회를 양분화하는 제도다.
폭스바겐의 집행이사회는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 구성돼 있다. 내부 승진자가 주를 이루는 BMW와 달리 폭스바겐은 내·외부 인사를 두루 기용했다. 올리버 블루메 CEO는 1994년 아우디에 입사해 폭스바겐그룹 내 폭스바겐과 포르쉐 등을 거쳤다. 포르쉐 CEO를 겸한다.
랄프 브란트슈테터 중국산업 담당자가 세 번째 주요 경영진으로 등재돼 있다. 폭스바겐 공장에서 정비공 교육을 받은 뒤 1993년 입사한 그는 2015년 이사회 구성원이 될 때까지 제품 출시와 구매 책임자 등을 거쳤다. 게르놋 될너 아우디 이사회 의장도 폭스바겐에서 업을 시작했다. 재무 전문가나 법무·리스크 책임자들은 외부 업력을 기반으로 폭스바겐 이사회에 합류했다.
BMW의 경우 올리버 집세 CEO가 집행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1991년 BMW에 입사해 생산·기술·기획 부서를 두루 거친 정통 내부 승진 인사다. BMW는 요헨 골러 영업담당과 밀란 네델코비치 생산담당, 요아힘 포스트 개발담당은 물론 재무 담당자와 노동·인사 전문가도 BMW에 오래 몸담아온 BMW맨들로 꾸렸다.
◇'오너 일가' 참여하는 강한 감독이사회, 독립성 제한되기도
이원이사회 제도만 보면 경영과 견제, 소유와 운영의 역할이 매우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사회도 다시 두 개의 개별 이해관계 그룹으로 구분해 견제 기능과 독립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현장에 적용하면 예상 밖으로 경영진과 감독이사회 모두 지배주주에 의해 움직이는 양상이 있다. 감독이사회의 권한이 강력하고 이 위원회에 오너일가가 참여하는 경우가 잦아서다. 이 경우 회사들은 지배구조에 대한 공지를 통해 오너일가가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더라도 독립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유를 명시한다.
예컨대 폭스바겐은 대주주 가문인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3인이 감독이사회 내 주주 대표단에 포함돼 있다고 명시하면서도 독립성이 결여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유로는 일가가 감사위원회 보수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경영진이 5년 이내를 주기로 교체되고 있어 장기적인 협업 관계를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BMW도 마찬가지로 주주일가가 감독위원회에 참여했다. 또 과거 경영에도 참여했다가 감사로 옮긴 인물이 있고, 주주들은 감사위원회를 통해 경영전략을 수용할 지를 결정한다.

때문에 감사위원회의 견제 작용을 넘어서는 활동도 가능하다. 감사위원회나 경영진의 자율성이 일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때문이다. 실제로 폭스바겐그룹의 지난 CEO 교체를 두고 오너일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폭스바겐의 올리버 블루메 CEO
(사진)가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대차 경영진, 전문성 확립·선임 사외이사로 객관성 유지
현대차그룹은 반대로 오너인 정 회장이 '경영'에 집중한다. 이사회 의장이지만 견제보다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에 가깝다.
현대차도 이사회에 관한 사항에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서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및 경영 환경에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책임경영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다고 적었다.
정 회장과 함께 C레벨을 구성한 인물들은 외부 영입 인사와 내부 전문가들로 꾸렸다. 호세 무뇨스 사장과 성 김 대외협력 담당 사장 등이 해외 영입 인사다. 진은숙 ICT본부장 겸 부사장은
NHN에서 CTO를 역임했다. 이동석 생산·안전 담당 사장과 이승조 CFO 등은 내부에서 차근차근 업력을 쌓아 승진한 인물이다.
구체적인 인물의 면면을 보면 정 회장은 현대정공 과장부터 시작해 내부에서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았고, 2020년부터는 회장에 취임해
현대차그룹을 이끌어온 핵심 인물이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푸조-시트로엥 딜러, 대우자동차 스페인, 도요타 유럽법인을 거쳐 닛산에서 북미·중국 법인장 및 최고성과책임자(CPO)를 역임한 후 2019년
현대차로 적을 옮겼다.
이동석 사장은
현대차에 1993년 입사한 후 생산현장을 오간 실무 전문가다. 이승조 CFO는 1990년
현대차에 입사한 후 경영관리실장과 재무관리실장, 그룹 감사팀장, 재경사업부장 등을 거친 재무통이다. 진은숙 부사장은 국내 최고의 클라우드·데이터 전문가로 불린다. 성 김 사장도
현대차그룹의 핵심 인물로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주요 인물들은 역량 구성표를 공개해 뒀다. 사내·사외이사를 포함해 12명 이사 중 8할이 재무와 경영 전문성을 지녔다. 약 7할은 산업과 기술에, 3할 이상이 법률 등에 전문성을 보이는 등 경영진의 전문성이 두루 갖춰졌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오너 경영의 색채는 있지만 그 자신이 전문가고, 고위급 경영진에 업력이 풍부한 전문가들을 배치해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의 견제 방안도 마련해 뒀다. 특히 올해 4월부터 도입한 선임사외이사 제도로 사외이사의 영향력을 키웠다. 초대 선임사외이사로 심달훈 사외이사(현대자동차), 조화순 사외이사(
기아) 등을 선임했다. 사외이사만이 참여하는 사외이사회와 회의 등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선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