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소유가 분산된 대표적인 기업이다. 공기업에서 출발했다가 민영화를 이룬지 20년이 넘었지만 거버넌스 면에선 여전히 공기업 성격을 띤다. 이사회와 경영에 정치권과 관료 영향력이 여전하다. 정권 변화 때 마다 이사회도 물갈이되는 관행도 이어지고 있다. 이사회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KT 거버넌스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본다.
차기 대표 선임 키를 쥔 KT 주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가 자기 입장을 수립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업 이해관계자는 단연 주주다. KT 주주 명단에는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국민연금공단, 신한은행 등이 올라와 있다. 지분이 5% 미만으로 시장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주주까지 감안하면 대표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는 더 많을 수 있다.
◇ 정치 중립성 도마 위 국민연금, 어떤 의견 낼까
KT 김영섭 대표가 대표 후보자 시절이었던 당시 이사회에 전달한 주주들의 의중은 뚜렷했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사진 색깔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용산 대통령실이 윤경림 당시 사장을 새로운 대표 후보로 선임하길 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윤 사장을 후보로 옹립했다. 하지만 정치권 중심으로 윤 후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연일 제기되자 윤 후보를 포함해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자진 사퇴했다.
당시 KT의 최대주주는 지분 10.12%를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었다. 2022년 말 국민연금에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이사장과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이 재직하고 있었는데 그해 말 국민연금 측은 'KT CEO 최종후보 결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과거 CEO 선임 절차가 불분명했다는 내용을 지적하면서 당시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사실상 반대했다. 김 이사장 스스로 KT 거버넌스를 공개적으로 문제삼기도 했다.
KT 전임 사외이사는 "그 이후 용산 대통령실이 원하는 인사가 누구냐에 대해 이사회에서 논의가 있었고 구현모 전 대표 연임 대신 윤경림 당시 사장의 대표 후보 선임이 대통령실이 바라는 수순이라는 얘기를 들어 윤 당시 사장의 후보 선임을 결정했다"면서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주주 쪽에서 윤 당시 사장이 대통령실이 의도한 이가 아니라는 말이 나왔고 이사회와 주주들 모두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분명한 사실은 당시 국민연금 측에서 KT 대표 후보 선임 관련 목소리를 냈다는 점인데 지금도 김태현 이사장과 서원주 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적을 두고 있는 만큼 시장에선 이번에도 국민연금이 KT 상대로 목소리를 낼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KT를 지켜보는 눈이 많아진 만큼 오해를 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KT 이사회 독립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향방을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각 정부부처 장·차관이 포함한 당연직 6명과 각계 대표 위촉직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장 안팎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정치적 중립성이 오랜기간 문제시된 이유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 거버넌스가 정치권에서 자유롭지 않은 측면은 있다"면서 "현재 위탁운용사 의결권 행사 관련 패널티 보상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거버넌스 [이미지=보건복지부]
◇ 현대차 최대주주 영향력…이사회 멤버 의견통일 과제
하지만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KT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면서 변수가 생겼다. 현대차그룹이 KT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선을 긋고 있지만 국민연금과 다른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김영섭 대표 선임 당시 '최대주주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현재 KT 이사회 내 현대차그룹 추천으로 이사회에 합류한 이는 곽우영 전 현대차 부사장이다.
여기에 신한은행과 기타 주주들 의견을 반영하고 있는 이사도 이사회에 포함돼 있다는 게 KT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국민연금 측이 특정 의견을 내비치더라도 사외이사 의견이 만장일치로 통일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KT 이사회는 지난해 총 15차례 정기이사회를 개최하고 총 67개 안건을 심의했는데 이사회 멤버 10명 만장일치로 통과되지 않았던 안건은 모두 4건으로 집계됐다.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비교적 활발히 낸 이는 이승훈 사외이사다. 금융투자업계 주주 추천으로 이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외이사는 지난해 5월 엡실론 투자계획 안건을 비롯해 장기성과급 처리 및 자기주식 처분 안건, 리벨리온-사피온코리아 간 협병 안건, 케이티클라우드 내부거래 추진 안건 등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 사외이사는 KT 민영화 이후 처음 선임된 금투업계 출신 이사이기도 하다.
반대가 아니더라도 기권으로 의사결정을 대신 한 이사들도 있다. KT 관계자는 "지금 이사회가 현대차 혹은 국민연금 측 의견을 완전히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각자가 각기 다른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보니 이사회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 데다 여기에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다보니 이사회 안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관찰되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멤버 상당수가 내년 정기주총 시기 임기를 마친다는 점도 주주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사회 멤버들이 각자의 정치적 소신을 발휘해 대표 선임에 의견을 내기엔 재선임 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KT가 통신업을 영위하는 한 외풍은 계속될 수 있고 사외이사 재선임 여부까지 고려하면 이사회 독립성 확보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