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삼성 지배구조 공격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변화 요구가 본격화한 지 수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국내 기업 대상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개조 시도가 어떤 효과를 내는 지에 대한 데이터도 축적됐다. 케이스 분석을 통해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때 결과가 단기 주가 상승이나 주주환원 이벤트로 끝났는지, 아니면 이사회의 선진화와 견제 기능 강화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 파트너십을 내세웠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곧 철수했는지, 아니면 장기적인 관계로 기업의 체질적 변화를 이뤘는지 추적한다.
몇해 전만해도 행동주의 활동을 하면서 정작 행동주의 펀드로 불리기를 꺼려하는 곳이 많았다. 행동주의 운용사라는 표현을 쓰면 수식어를 빼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행동주의라는 표현에 민감했던 건 당시 우리 자본시장의 인식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튀' 논란을 비롯해 단기 수익률만 좇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행동주의를 펼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펀드가 많아졌다. 다만 달라진 것은 행동주의에 파트너십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단기 차익을 노리기보다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가치 상승까지 동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특히 거버넌스에 대한 지적이 잦다.
아직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장기 파트너십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은 여전히 단기 수익률로 비판을 받는 사례도 많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들은 동행의 시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답한다. 엑시트의 시간보다 기업에 남긴 것을 봐야 한다는 전언이다.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기업 체질을 바꾸는 것은 행동주의 펀드가 남기고자 하는 가치다.
◇보드 리빌딩은 이제 시작…상법 개정 5년, 여전히 비주류
이사회 진입 등 거버넌스 개선의 관점에서 보면 국내 행동주의의 성과를 정의하기는 아직 이르다. '장하성 펀드' 등 행동주의가 등장한 지는 오래지만 초기에는 주주환원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주를 이뤘다. 2018년 KCGI의 한진칼 투자로 경영권 참여 전략이 조명을 받았지만 일반적 흐름이라기보다 독특한 전략이어서 주목도가 높았다.
그래픽=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행동주의가 전례없이 활발해진 지금도 자산운용업계에서 행동주의가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운용사들은 소액주주 결집을 핵심 전술로 삼는 만큼 주주서한·언론 대응·공개 캠페인을 통해 스스로를 전면에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 운용사가 일반적인 자산운용사보다 시장의 평가와 비판에 더 자주 노출된다. 특히 이사회 진입의 문턱을 낮춘 상법개정안이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역사도 채 5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 평가를 하긴 이른 시점이다.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기업에 명확한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투자사들이 있다. 이사회 진입과 경영참여를 통해서다. 수년전부터 이사회의 문을 두드리고 주주설득에 성공해 입성까지 한 운용사가 여럿이다. 운용사와 기업의 의안 중 어느곳이 더 밸류업에 효과적인 지를 떠나 기업 혼자서만 의사결정을 하지 않도록 한 견제장치가 남게된 셈이다.
◇남아서 바꾼 행동주의…이사회·거래구조·판례로 남긴 흔적
장기 투자와 행동주의가 병행되면 기업의 체질 개선을 이끌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이 2021년 지분 약 5%를 취득한 뒤 2022년부터 경영참여 활동을 이어왔다. 2024년 정기 주총을 거치며 이사회 내부로 진입했다. 이후 자본정책과 관련한 주요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안팎에서의 견제로 행동반경을 넓힌다.
얼라인파트너스는 2022년 JB금융의 주요 주주로 올라선 뒤 주주서한·주주제안 등으로 캠페인을 이어왔다. 2024년 주총에서 주주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 멤버가 됐다. 주주환원 요구와 경영참여를 병행하면서 주가 상승의 재료가 됐다.
SM엔터테인먼트 투자로는 내부거래 구조를 바꿨다. 얼라인은 내부거래와 지배구조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장기간 관여했다. 그 과정에서 라이크기획 관련 거래 구조가 조정·정리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코웨이 주주총회에서는 표결에서는 졌지만 절반에 가까운 찬성률을 기록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남양유업은 내부 의결권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이사회와 경영 판단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주 측 추천 감사가 선임된 이후 이사 보수한도 승인 결의를 문제 삼는 소송이 제기됐고 최종심 판단까지 이어지며 관행에 제동을 걸게 됐다. 보유기간만으로 평가하기보다 떠난 뒤에도 남는 규율과 기록이 생겼는지 여부가 장기 관여형 행동주의의 핵심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짧은 기간 투자=나쁜 것' 아냐" 동행의 시간보다 중요한 건
주요 행동주의 플레이어들은 투자의 기간만으로 주주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경계했다. 단기·장기라는 시간의 길이만으로 파트너십을 판정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투자의 기간보다 거버넌스 개선과 그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이 잔존했는 지를 봐야한다고 답했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인 행동주의 자산운용사의 대표는 "어떤 펀드나 투자자이든 상황에 따라 다소 짧은 기간 투자한다고 해도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단기 투자자는 나쁘고 행동주의는 단기라는 오해가 쌓일 수 있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행동주의 운용사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기간은 긴 것이 대부분이다. 단기 투자로 소기의 성과를 내는 것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상황에 따라 기업이 주주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호응을 하고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졌다면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는 지배구조 개선이므로 기간보다는 달성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