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범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4기 위원회 체계를 맞이했다. 준감위 출범 당시 그룹 준법 경영 강화에 따라 역할 축소를 예상했던 목소리와 달리 준감위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룹 산하 7개 협약사 거버넌스 이슈까지 점검하면서 사실상 삼성그룹 거버넌스 컨트롤타워라는 평가도 나온다. theBoard는 삼성 준감위의 그간 성과를 진단하고 향후 역할을 전망해본다.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가 출범 6년 만에 거버넌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4기 위원회 출범과 함께 기존 운영 체계를 손질해 거버넌스 소위원회를 신설한 것이다. 준감위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해 온 지배구조 개선 의제가 최근 수년간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생겨난 변화라는 점에서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계에서는 준감위가 일련의 상법 개정 이후 시장 분위기 변화에 따른 삼성그룹의 장기적인 거버넌스 변화의 키를 주도하고 일종의 거버넌스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 자연 소멸 강조한 준감위, 점점 더 커지는 존재감
삼성 준감위가 출범한 건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인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그룹은 법원 권고를 통해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물산과 삼성전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SDS·삼성SDI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7곳과 협약을 체결해 독립 감시기구 인 준감위를 출범시켰다. 국정농단 사태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적법성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르던 시기다.
출범 당시 시장에선 준감위가 그룹의 단순 준법경영 감시 역할을 넘어 삼성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일정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준감위가 국정농단 사건과 경영권 승계 논란 이후 등장한 조직인 만큼 총수 리스크를 통제하고 그룹 차원의 거버넌스 체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실제 준감위는 출범 직후 차기 승계 문제를 비롯해 노조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 이른바 '3대 준법 의제'를 제시했다.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4세 승계 포기 발표 등도 이 시기 이뤄졌다. 준감위는 협약사 이사회 결의 안건을 보고 받고 이와 관련한 의견을 제공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보고서
이후 준감위의 활동 영역은 꾸준히 확대됐다. 최고경영진 간담회를 비롯해 각 협약사 소속 사외이사 간담회, 계열사 준법통제체계 평가, 해외 사업장 방문, 한경협 재가입 관련 의견 제시 등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최근에는 계열사 내부거래와 대외후원 검토, 준법교육, 컴플라이언스 워크숍 등 상시적 준법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준감위가 반대 의견을 낸 안건은 사실 실행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준감위 출범 초기 준감위가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조직인만큼 관련 외부 감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투명한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는 의견이 제기되곤 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 간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금융·산업 분리 규제 등 제도적 변수까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오너 사법 이슈가 잠잠해지면 자연스럽게 준감위 역할도 작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 준감위 성과에 시선집중…'시장 변화 감안' 목소리
하지만 준감위는 지난 2월 4기 위원회을 맞이하면서 협약사에 삼성E&A를 추가하는 한편 소위원회에 거버넌스 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조직 체계를 재편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일각에서 역할 축소 가능성이 거론됐던 것과 달리 오히려 그룹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 준감위의 최근 활동은 계열사 준법통제체계 점검, 내부거래 및 대외후원 검토, 준법교육 등 컴플라이언스 영역에 집중돼 왔다. 출범 초기 승계와 지배구조 개선이 핵심 화두였다면 최근에는 ESG와 준법경영 체계 구축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감위는 4기 위원회 출범과 함께 기존 소위원회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새롭게 구성된 조직은 '노동인권소위원회'와 '거버넌스소위원회' 등 두 개다. 업계에서는 준감위가 다시 지배구조 의제를 공식 의사결정 체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당장 삼성그룹의 대규모 지배구조 개편이 가시화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준감위가 해당 이슈를 별도 전문 영역으로 다루기 시작한 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삼성그룹 준감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이슈는 이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살펴봐 온 사안"이라며 "거버넌스 소위원회 역시 경영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준법·ESG 관점에서 관련 현안을 보다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관건은 실질적인 성과다. 준감위는 독립 조직이지만 법적 의결권을 가진 이사회 기구는 아니다. 권고와 의견 제시는 가능하지만 직접 경영 판단을 내릴 권한은 없다. 결국 거버넌스 소위원회가 어떤 의제를 발굴하고 계열사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이 이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결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이사회 책임과 주주권 보호 의무가 강화되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거버넌스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는 분위기다.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기관투자가들의 주주환원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거버넌스 소위원회 신설이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논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준법위 역할을 논의할 때 최근의 시장 환경 변화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