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10년 만에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 나섰다. 주요 연기금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 주주 권리 행사에 따른 규정을 뚜렷하게 재정비하고 국내 자본시장 성장의 주춧돌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theBoard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을 앞두고 지난 10년 간 관련 제도 현황과 주요 사건, 인물 등을 조명해본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지 10년을 맞았다. 참여기관은 2017년 말 18곳에서 지난해 말 249곳으로 대폭 증가했고 주주 반대 의결권 행사와 기업 관여 활동도 많아졌다. 그러나 실제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장치가 전무한 데다 의결권 행사 내용을 밝히고 있지 않고 공개하더라도 형식적으로 공시하는 곳이 적지 않은 실태다.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따른 단기 성과 압박을 경계하는 기업들의 우려 역시 사그러들고 있지 않다.
◇ 수탁자 책임 원칙 제정 이후 채택 기관 양적 팽창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2014년 금융위원회가 도입 계획을 선보였고 2016년 민간 전문가 중심의 제정위원회가 수탁자 책임 원칙을 제정했다. 영국이 2010년 처음 코드를 제정한 뒤 캐나다와 스위스, 일본 등 주요국들이 코드를 연이어 채택하던 시기다. 기관투자가가 주주활동을 적극 전개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그러면 주주이익이 확대해 자본시장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기대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성 규범임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 정책 드라이브에 힘입어 채택 기관은 빠르게 늘었다. 2017년 말 18곳이었던 참여기관은 지난해 말 249곳으로 불어났다. 민간 기관투자자 주총 안건 반대율도 2016년 1.8% 수준에서 2024년 4.6% 정도로 높아졌다. 반대 비율만으로 코드 도입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관행적으로 찬성하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난 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기업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곳도 많아졌다. KB자산운용은 2019년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최대주주 개인회사와의 내부거래 개선과 배당 확대,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을 요구했다. 투자대상 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 회사를 점검하고 수탁자 책임 활동을 보고해야 한다는 코드 원칙을 이행한다는 취지였다. KB운용 캠페인은 타 운용사로 번져 결국 SM엔터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기업들의 우려도 상당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은 2018년 국민연금이 코드에 참여하면서 본격화했다. 재계는 주주 감시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국민연금의 자본시장 영향력을 활용해 기업 이사 선임과 사업계획에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점 관리기업과 주주서한 대상으로 지정되는 것만으로 시장 낙인이 찍힐 수 있고 단기 성과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실제 주주 행동주의를 맞닥뜨린 상당수의 기업들은 기관 간 소통 과정에서 단기 차익을 실현시키는 것보다 기업 자체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성과를 배당이나 주주 환원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질수록 투자와 고용, 보상 등 다른 기업 이해관계자 요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경영자 입장에선 이 과정에서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절대 다수 침묵 속 제도 운영에 한계 목소리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 과정에 다양한 문제들이 노출되기도 했다. 코드 채택 이후 관련 정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절차가 없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주주활동 이행 내역 공시 기관은 전체 채택 기관 249개 중 23곳에 불과했다. 비슷한 시기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할 것이라고 시장에 발표한 55개 기관 중 예고 후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예정 상태에 머물러 있는 기관은 51곳에 달하는 실정이다.
홈페이지 등에 의결권 행사 결과를 공시하더라도 그 내용이 형식적으로 기재돼 있는 경우들이 허다하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종합자산운용사 임원은 "주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꼼꼼하게 하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하우스 자체의 자기 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결과적으로 의결권 자문사 의견을 의결권 행사에 반영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우스 의견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실무적으로 의결권 행사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5%룰 때문이다. 타 기관과 공동으로 보유한 지분이 5% 이상이면 보유 목적과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지분이 1% 이상 변할 때마다 변동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보고 부담은 보유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배당 확대 요구 등과 같은 보편적 권리 주장은 일반투자로 분류되고 이사 후보를 특정하거나 해임을 요구하는 경우는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에 따른 주주 권리 행사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동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분 5% 이상을 일반투자 목적으로 보유한다고 공개했는데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이사 해임이나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 자칫 경영권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고 이 경우 자칫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관투자자 간 협력적 주주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생기지만, 공동보유자로 묶일 가능성을 우려해 구체적인 행동에 힘을 보태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관련 제도 개선 논의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