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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최종길 한국종합기술 이사 "배 망칠 공약엔 표 안준다"

상장사 유일 종업원지주회사에서 감사위원장 역할 "독립이사회가 리스크 견제”

고진영 기자

2026-08-18 08:42:09

판결문의 시간은 과거에 머무른다. 사건을 되짚고 답을 찾는 것이 판사의 소임이다. 최종길 한국종합기술 독립이사는 십여 년간 판사로 일했다. 한 달에 서른 건, 마흔 건씩 판결문을 썼다.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7년 변호사로 전직했다. 법조계에 몸담은 세월만 30년을 넘는다.

이사회의 안건은 미래형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록은 없는데 결정은 해야 한다. 판단의 결과는 혼자가 아닌 회사와 주주 전체가 짊어진다. 최 이사는 2024년 3월 처음으로 이 까다로운 자리에 앉았다.

◇오너가 1000명 된 사연

한국종합기술은 국내 상장사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종업원지주회사다. 2017년 회사가 매물로 나오자 직원 800여명이 뜻을 모았다. 한 명당 5000만원을 내놓고 직접 사들였다. 지금도 3년마다 투표로 대표를 뽑는다. 최 이사는 올 3월 재선임돼 한국종합기술의 감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연은 건설경영 CEO 과정에서 시작됐다. 최 이사는 여기서 김영수 한국종합기술홀딩스 대표를 만났다. 회사가 팔릴 처지가 되자 '우리가 사자'며 임직원 인수를 설계하고 끌고 간 주역이다. 노조위원장에서 대표까지 올랐다.

최 이사는 "(김 대표는) 다른 기업이 인수하는 것보다 직원들이 인수하는 게 직원한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결심해 시작한 겁니다"고 소개했다.

말이 쉽지 실행은 다른 문제였다. 우선 사람을 모아야 했고 회사를 설득해야 했으며 모자란 돈은 은행에서 빌려야 했다.

그렇게 세워진 한국종합기술홀딩스가 지금 상장사 지분 52.96%를 쥔 최대주주다. 홀딩스 지분 100%는 임직원 협동조합 몫이고 출자 임직원은 이제 1000명을 넘어섰다.

최 이사가 독립이사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도 이 구조에 있다. "소수 대주주의 이익이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정답지 없는 시험지

두 가지 일의 차이를 그는 수학에 비유하고 있다. 그는 "판사는 이미 발생한 일을 다룹니다. 답이 있는 거예요. 고난도의 수학 문제 같은 거죠. 열심히 찾으면 됩니다. 그런데 기업은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하잖아요. 미래는 열심히 한다고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라고 설명했다.

한국종합기술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에 독립이사 3명, 총 8명이다. 최 이사와 이만덕 변호사, 회계사 출신인 황재익 어센트프라이빗에쿼티 투자본부장이 독립이사로 있다. 감사위원회는 법령상 설치 의무가 없으나 회사가 자발적으로 운영 중이다.

최 이사는 "이사회에 가면 두세 시간씩 사안을 토론한다"라며 "리스크 헤지가 충분히 됐는지 다 따지고 오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독립이사들이 말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따질 것도 늘었다. 회사는 최근 몇 년 새 설계·감리라는 본업에 친환경에너지 EPC(설계·조달·시공)와 민간건설 시공을 더해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시공엔 책임준공 약정이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그는 "공사를 다 수행해도 우리가 얻는 이익은 5% 안팎인데 잘못되면 공사대금보다 큰 채무를 인수할 수도 있다"라며 "리스크가 충분히 분석되지 않으면 그런 일은 맡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주는 곧 실적이다. 사업 부서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보다 신중한 편에 서는 게 독립이사들의 몫이라고 그는 말했다. "독립이사들이 조금은 더 보수적이다"고 귀띔했다.

◇평생 탈 배를 가라앉히지 않는다

한국종합기술은 3년마다 공개 공모와 전 임직원 투표로 대표이사 후보를 뽑는다. 밖에서 보기에 미심쩍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유권자가 직원이면 결국 직원 듣기 좋은 공약이 이기지 않겠나.

최 이사의 말은 달랐다. "직원들에게 여기는 평생 직장고 잠깐 있다 나가는 회사가 아니라 평생 다닐 회사인데 회사를 망가뜨릴 공약을 누가 좋아하겠나"고 반문했다.

포퓰리즘은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평생 탈 배라면 배를 가라앉힐 공약에 표를 줄 리 없다. 직원이 곧 주주라는 사실은 노사관계의 문법을 바꿔 놓았다. 그는 "회사와 적대적인 관계에서 많이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된다"라며 "내가 주주인데 회사가 잘돼야 하니까 회사와 근로자 간 갈등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뽑힌 쪽 역시 긴장을 놓지 못한다. 그는 "오너의 신임만 받으면 계속 가는 구조가 아니라 계속 선거로 뽑히니까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테랑이 대접받는 풍경도 여기서 나온다. 엔지니어링 업계는 입찰에서 기술자 경력이 점수로 환산된다. 경력이 곧 수주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이어 "대표이사를 지낸 분이 임기가 끝나고 다시 감리를 맡기도 한다"라며 "다들 본인이 주주니까 나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늘이 없진 않다. 내부 사정에 밝고 익숙할수록 선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구조로 전환이 필요할 때 외부 시각과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한 리더십 전환에 한계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직선제의 취지는 지키되 후보 추천과 검증 과정은 더 열어두자는 게 최 이사의 제언이다. 필요하면 외부 인재도 검토하고 왜 영입이 필요한지 직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땅에 닿은 이상(理想)

인터뷰 말미에 꼭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최 이사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시간이 빠듯한데도 서두르지 않았다. 답은 길고 정성스러웠다. 얼굴에 뚜렷한 열의가 어렸다.

그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종업원지주회사가 잘 되고 있다"라며 "노동자들이 주인이면 회사가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 마음대로 빼먹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는데 들어와 보니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존속 가능성이 충분한 것은 물론이고 회사 안의 갈등 요인도 훨씬 적다"고 덧붙였다.

또 "종업원이 회사의 주인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이상이다"라며 "이상이 크면 발이 떠 있기 마련인데, 이 회사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서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이다"고 강조했다.

숫자도 그를 거들고 있다. 한국종합기술은 지난해 매출 412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 60억원은 전년의 6배를 넘겼다. 수주잔고는 8834억원까지 쌓였다. 4년간 주당 100원에 묶여 있던 배당도 150원으로 올렸다.


다만 그는 이 모델이 아무 데서나 복제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너들이 경영권을 포기하는 일은 드물고 직원들이 직접 돈을 걸 만큼 단합하기도 힘들다. 기술자들의 회사, 사람이 자산인 엔지니어링업이었기에 유리했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의 바람은 당장의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동행이다.

그는 "지금은 한국종합기술 혼자서 고난의 바다를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건데 같이 가는 동지들이 많아지면 이런 회사를 키울 제도적 변화도 쉬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기를 마칠 때 어떤 이사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이랬다. "한국종합기술의 지배구조가 단순히 독특하거나 특이한 사례로 소개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의 주인의식과 전문성, 이사회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결합된 성공적 기업 모델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