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오너 3세 전병우 전무를 향한 지분 승계가 본격화했지만 경영권 이양까지는 이사회의 검증 절차가 남아 있다. 김정수 회장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사내이사 중심의 경영위원회가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사전 검증하는 가운데 최종 선임 여부를 판단할 이사회는 독립이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 이사회가 개편됐지만 전 전무 경영 승계 과정에서 실질적 심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증여 효과 제한적…김정수 회장 이끄는 이사회 역할론
삼양식품은 지난달 6일 김정수 회장이 장남 전병우 전무와 장녀 전하영 씨에게 각각 지분 2.28%와 0.38%를 증여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전 전무 지분은 0.59%에서 2.87%로 확대되고 하영 씨 지분은 0.05%에서 0.43%로 커진다. 개인 주주 중에서는 전인장 전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전 전무는 2019년
삼양식품에 입사해 해외사업본부 등을 거쳐 현재 COO로 활동하면서 삼양애니의 대표직도 겸직하고 있다.
다만 이번 증여에도 삼양라운드스퀘어를 정점으로 한 삼양그룹 전체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김 회장은 삼양라운드스퀘어 지분 32.0%를 가진 최대주주이고 전 전무는 지분 24.2%로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전 전무
삼양식품 지분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지배력을 확보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증여는 부담부 방식으로 이뤄지는 만큼 회사와 개인 이해관계가 한층 밀접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특히
삼양식품 이사회는 김정수 회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이 지배구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CEO 승계 정책이다. 이사회는 2024년 5월 이사회 결의를 통해 승계 정책을 마련했고 지난해 1월 정책을 고도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연임과 신규 선임을 분리해 승계 절차를 구체화했고 CEO 유고 시 후보군을 관리하는 한편 규정 내 CEO 자격요건 등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관련 정책을 외부에 전체 공개하고 있진 않다.
승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은 이사회 산하 경영위원회다. 경영위는 CEO 후보를 사전 검증하고 이사회에 추천하는 한편 비상 시 CEO 후보 사전 검증 절차를 추진할 수 있다. 경영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김정수 회장을 비롯해 김동찬 부사장과 전수홍 상무, 한세혁 상무 등 사내이사 4명이다. 김 회장이 지주사 최대주주이면서 대표직과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어 사실상 김 회장 중심으로 후보군이 추려지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 전 전무가
삼양식품 지분을 증여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사나 대표이사 지위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등기이사로 진입하려면 이사회의 후보 추천과 주주총회 선임을 거쳐야 하고 대표이사로 올라서려면 CEO 승계정책에 따른 후보 검증과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 이번 증여로 후계 구도는 한층 더 분명해졌지만 전 전무가 직접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기까지는 아직 제도적 단계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이사회 실질적 기능 평가
여기에서 중요한 건 독립이사들의 역할이다. 현재
삼양식품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과 독립이사 5명 등 총 9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말까지 사내이사와 독립이사는 각각 4명씩으로 동률을 유지했지만 올 3월 정기주총에서 독립이사 1명(목승호)을 추가 선임하면서 독립이사 비율이 기존 50%에서 56%로 증가했다. 독립이사진이 모두 같은 의견을 낼 경우 이사회 의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게 된 셈이다.
시장 관계자는 "지분을 증여하는 것과 경영에 나서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경영 승계의 경우 이사회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최대주주 일가를 경영에 참여시키려면 전체 주주가 납득할 수 있는 논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독립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구축하고 주식 증여에 나선 것은 김정수 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가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사회가 처음부터 독립이사 중심으로 운영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사내이사 3~4명에 독립이사 1~2명을 두는 구조가 이어졌고 오너 일가의 우호주주로 평가받던
IPARK현대산업개발 출신이 연이어 이사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현산 측은 2019년 전인장 전 회장 등의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의 자격을 상실시키는 정관 변경안을 주주제안하며 오너 일가와 대립, 관계가 사실상 어그러졌다.
이후 이사회는 전면적인 재편 과정을 거쳤다. 전인장 당시 회장이 횡령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으면서 경영 복귀가 어려워진 가운데 김정수 당시 사장은 법무부 취업 승인을 받아 2020년 10월 미등기 총괄사장으로 복귀했다. 이듬해 3월 사내이사로 다시 이사회에 진입했고 같은 해 12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삼양식품은 이 과정에서 독립이사를 4명으로 늘리고 감사위원회와 보상위원회 등 이사회 산하 위원회들을 설치했다.
현재
삼양식품 독립이사 후보는 이사회 산하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독추위에는 사내이사 1명(전수홍)도 참여하고 있어 완전한 독립성을 구축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절차적 정당성은 갖췄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에는 이사회 결의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추가로 신설했다. 시장 관계자는 "향후 경영권 승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실질적 심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시험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