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적 이사회 제도의 핵심은 '경영을 누가, 어떻게 견제하는가'다. 이사회는 경영진의 자격과 전략을 감시하고 검토할 때,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힘을 갖는다.
현대차그룹과 BMW, 폭스바겐은 자국의 지배구조 환경과 경영 철학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이사회 제도를 운용 중이다.
단일이사회제인 한국에서는 사외이사를 통한 독립성 확보가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현대차는 국내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이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노조와 주 정부, 오너 일가가 감독이사회에 함께 참여하며 복합적인 견제 구조를 구성하고 있다. BMW는 주주 가문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오너 일가의 장기 재임과 노조·정부의 복합적 이해관계로 인해 이사회가 전략보다는 정치적 교섭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현대차, 사외이사회 신설·다양화로 견제기능 강화 현대차그룹은 단일이사회제 아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정의선 회장이 겸하고 있다. 전략의 수립과 의결, 실행이 하나의 구조로 이뤄지는 체제다. 전문 경영인 영입으로 객관성은 확보했지만 경영 부문에서는 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사회의 독립성은 전적으로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축될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지배주주와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이 모두 정 회장인 만큼 선진적 견제장치로 신설한 제도다. 제조사 중에서는
SK하이닉스와 삼성 계열사, 롯데 계열사 등이
현대차와 함께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상장기업의 9할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같은 만큼 참고할 만한 선례다.
현대차는 심달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기아는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초대 선임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와 함께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회도 정례화했다.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회도 정례화했다. 역시 흔한 사례는 아니다.
현대차 이사회는 총 12인으로 이 중 7명이 사외이사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중시한다고 명시했다.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학과 교수와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학계 주요 인물이 포진해 있다. 또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아시아 PE부문 대표 출신인 김수이 이사와 퀄컴 아시아 부회장 등 금융과 산업계 전문가도 선임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출신 인재도 눈에 띈다. 벤자민 탄 이사는 싱가포르 GIC의 아시아 포트폴리오 매니저 출신이다.
이사회 산하에는 감사위원회와 보수위원회,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모든 위원회가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두고 있다. 선임 사외이사는 이사회 의장과는 별도로 주주나 경영진과 소통이 가능하고 사외이사의 회의를 주재할 수도 있다. 다만 여전히 이사회 의장을 오너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도권은 정 회장에게 집중돼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는 어떨까. theboard의 이사회 평가 결과를 보면
현대차와
기아의 총점은 시총 상위기업 내에서 톱5안에 들 만큼 높게 채점됐다. 규모에 걸맞는 선진화를 이뤘다는 의미다. 특히 이사회 활동내역 공개의 투명성과 이사회 평가 항목이 좋은 점수를 얻었다.
현대차그룹이 이사회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다.
◇폭스바겐, 이사회 차지한 노동자·지방정부…다층 견제 구조 독일은 이원이사회제를 채택하고 있다. 경영을 맡는 집행이사회(Vorstand)와 이를 견제하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가 제도적으로 분리돼 있다. 폭스바겐과 BMW도 법제화된 제도를 따른다. 각 회사의 감독이사회 멤버만 20명에 달한다. 주주대표 10인, 노동자대표 10인으로 구성해야 해서다.
폭스바겐의 2024년말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중 적어도 10명의 의원이 결의안 통과에 참여해야만 정당성이 있다. 폭스바겐은 이사회의 구성 목표로 최소 3인 이상의 글로벌 전문가, 주주대표 중 4인 이상의 독립적 인사, 또 3인 이상의 독립적 인물을 선임해야 하고 나이는 선임 당일 75세 이하여야 한다.
주주 측에서는 오너일가인 피에히·포르쉐 가문의 한스 미헬 피에히, 페르디난트 올리버 포르쉐, 볼프강 포르쉐와 함께 오랜 기간 오너일가와 호흡을 맞춰온 현 감독이사회 의장인 한스 디터 푀치가 대표적인 인물로 참여 중이다. 한스 디터 푀치는 포르쉐SE CFO 출신으로, 중재위원회와 지명위원회(Nomination Committee) 등 핵심 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주요 주주인 니더작센주 정부가 2명의 대표를 감독이사회에 파견할 수 있다. 현직 주총리인 슈테판 바일이 감독이사회 멤버로 참여 중이다. 카타르 투자청(QIA)도 이사를 파견한다.
노동자 대표(직원 대표)는 총 10명 중 7인은 근로자가 직접 선출하고, 3인은 노조에서 추천한다. 노조 측 핵심 인물은 폭스바겐 노조 의장인 다니엘라 카발로다. 카발로는 지명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소위원회에 참여 중이다. 이사회 안건에 대한 노조 입장을 대변한다.
이처럼 감독이사회 내부에서 주주 측과 노동자 측이 동등한 비율로 참여해 내부 견제 구도 또한 명확히 양분화된 것이 폭스바겐의 특징이다. 감독이사회는 CEO 선임과 보상 결정, 전략 승인, 리스크 관리 등 핵심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다.
다만 구성원 중 오너일가와 전임 경영진 등 내부 인원이 많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 형식상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실질적 견제가 충분하냐는 지적이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BMW, '콴트 가문' 영향력 속 BMW 출신 기용 BMW도 마찬가지로 오너일가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한다. 최대주주인 콴트 가문은 감독이사회에서 활동한다. 스테판 콴트와 수잔 클라텐(혼인 후 성바뀜)이 오너 일가다. 스테판 콴트가 부의장(deputy chairman)으로 선임돼 있고, 여동생 수잔 클라텐은 지명위원회에 몸담고 있다.
현재 감독이사회 의장은 니콜라스 피터 박사다. 1991년 BMW에 합류한 인물로 2016년까지 실무진으로 일하다 2017년부터 재무 담당 임원으로 활동했다. 스테판 콴트와 함께 부의장에 오른 인물은 마틴 키미히 박사로 뮌헨 금속노동조합, 뮌헨 노동조합 등 노조에서 주로 경험을 쌓았다. 의장과 부의장의 구성을 보면 주주대표와 노동자대표를 섞어 힘의 균형을 노렸다.
외부 인사도 선임했다. 마크 비처 Whirlpool Corp 회장과 영국 및 독일 Telefónica 출신의 레이첼 엠피 이사, 지멘스 그룹 출신인 하인리히 히징거 이사 등이다. Vianai Systems의 비샬 시카 박사도 IT 전문가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일부에서는 니콜라스 피터 감독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주요 인물이 BMW 내부 승진 인사이자 오너일가라는 점에서 제도적 독립성에 비해 외부 견제 기능은 다소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콴트 가문이 장기적으로 이사회에 참여하며 전략적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점도 잠재적 한계로 언급된다. 정치개입의 가능성은 있지만 정치인이 직접 한 지역을 대표해 참여하는, 폭스바겐과 같은 선제 조건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