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M&A가 흔해진 시대, 기업의 '국적'은 여전히 상징적·실질적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였을 때 단순한 소유권 이전 이상의 다층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지배구조와 계열사, 경영환경의 재편과 그 과정에서의 거버넌스 충돌 등이다. 글로벌 M&A를 앞둔 기업들이 미리 대비해야할 어젠다이기도 하다. THECFO는 국적 변화가 지배구조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망해본다.
하만 인수는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장사업 진출 가속화를 목적으로 한 만큼 인수 이후 하만의 전장사업부는 최우선 전략 영역으로 부상했다. 하만의 전장사업 부문은 삼성전자의 인수 전에도 전체 매출의 6할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았다. 현재 최고 경영진 구성에서도 자동차 부문 전문가이자 이 부문 사장인 크리스티안 소보트카가 CEO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가 된 지 8년째, 하만은 오디오 명가에서 전장사업의 리더 그룹으로 부상했다. 전체 매출액과 영업이익, 수주 잔고 등 주요 지표가 모두 큰 폭으로 성장했다. 시장 범위는 북미·유럽 중심에서 아시아·중동·남미까지 넓어졌다. 모회사와의 시너지가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하만의 성장 지표, 명확한 숫자의 변화
기업의 성장을 가장 담백하게 나타낼 수 있는 건 역시 숫자다. 삼성전자의 인수 후 하만의 성장세는 수치로 증명된다. 영업이익과 매출액 모두 뚜렷하게 상승했다.
하만의 영업이익은 인수 직후 흔들렸지만 2021년 약 6000억원까지 늘면서 안정세를 되찾았다. 인수 직전인 2016년에는 하만의 영업이익이 6800억원에 달했는데 2017년에는 574억원으로 줄었다. 2018년에는 1617억원, 2019년에는 3223억원이 됐다. 2020년에는 다시 555억원으로 하락했다. 직후 2021년 5991억원까지 다시 영업이익을 불렸다. 2022년 8800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2023년 1조1700억원, 지난해에는 1조3076억원까지 확대됐다. 주춤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만 24배 늘어난 셈이다. 매출액은 지난해 14조274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 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이 3조8000억원, 영업이익이 5000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와 2분기 영업이익이 이미 8000억원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하만의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본다. 영업이익률은 9% 안팎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했다.
인수 당시 전장부문의 수주 잔고는 270억달러였다. 3월 마이클 마우저(Michael Mauser) 전 CEO의 퇴임 소식을 전하며 하만은 그가 전장부문의 수주 잔고를 450억달러까지 확대했다고 밝혔다.
사들인 기업도 여럿이다. 2021년 미국의 차량통신 스타트업 사바리(Savari)를, 2022년에는 독일의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개발 기업 아포스테라(Apostera)를 흡수했다. 올해 5월에는 마시모 코퍼레이션(Masimo Corporation)의 사운드 유나이티드 소비자 오디오 사업을 3억5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오디오 명가에서 전장 리더로
하만은 삼성전자의 인수 전에는 여전히 오디오 전문 브랜드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만큼 JBL, AKG, 마크레빈슨 등 잘 알려진 음향 하이엔드 브랜드를 보유했고,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동안 오디오 기업의 강자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전장부문에서 하만의 입지도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하만이 전체 매출의 65% 이상을 전장 부문에서 벌어들인다고 공표했다. 이 수치는 '카오디오' 부문을 포함한 것이었다. 전세계 프리미엄 카오디오 시장의 35%를 선점했다.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도 병행했다. 고급차의 인포테인먼트 서비스 99%를 하만이 장악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민도 뚜렷했다. 신사업으로 사업의 축이 크게 이동하고 있는데 성장의 폭만큼 자금이나 기술 대응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만의 기업합병 공시를 참고하면 하만은 2015년 이전부터 회사의 장기 전략 목표와 지속성에 대해 고민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만이 2017년 1월 게시한 주주 특별총회 관련 공시 중.
2016년 8월 손영권 전 삼성전자 사장과 하만의 경영진들이 만나 자동차 분야의 협업을 논의하며 물꼬가 트였다. 삼성전자도 완성차 시장으로의 도전을 접고 전장사업에 발을 넓히고자 했지만 보수적인 시장의 특성상 진입장벽을 느끼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80억달러 인수는 하만의 법적 지위와 사업 위상을 동시에 바꿔놓았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사에서 삼성 100% 자회사로 전환되며 상장사로서의 여러 규제와 투자자 환원 등의 고민은 사라졌다. 대신 모회사 전략과 연계한 신사업·대규모 투자 결정 속도가 빨라졌다.
인수 초기부터 현재까지 삼성은 하만을 독립적인 자회사로 운영 중이다. 다만 전장기업으로서의 전환과 톱티어 그룹 안착에는 힘을 줬다. 하만의 오디오 브랜드로서의 경험과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 기업과의 파트너십, 삼성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 등이 통합되면서 시장 진입 속도와 기술의 완성도가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선진시장에서 신흥시장까지 발넓힌 하만, 넥스트 스탭도 준비
삼성그룹 편입은 하만의 시장 포트폴리오와 브랜드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인수 전 북미·유럽에 집중됐던 매출 비중은 아시아·중동 등 신흥시장 확대로 분산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 공략 전략을 바꿀 때 하만의 거점지도 조정하는 방법으로 하만의 시장을 늘려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하만의 새로운 자회사 하만 인터내셔널 타일랜드(Harman International Thailand) 설립이다.
하만은 삼성전자 인수 이전에도 독일과 일본 등 완성차 강국 기업과의 OEM 협력을 맺고 있었다. 인수 후에도 선진시장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등과의 OEM 협력을 확대했다. 삼성의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냈다. 소보트카 CEO는 올해 '상하이 모터쇼 2025'에 참석헤 전장부품 솔루션 '레디(Ready)' 포트폴리오를 내놨다.
오디오 부문은 삼성 스마트폰·TV에 하만 브랜드 스피커를 탑재하는 번들 전략을 추구한다. 브랜드 노출과 매출이 동시에 확대되는 효과다.
지배구조가 변화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도 여유롭게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콕핏 시장 점유율 12.3%로 증명된다. 삼성전자는 하만에게 관세 불확실성이 상존하지만 오디오와 전장매출 확대에 근거해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