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제약 이사회가 전직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대거 기용한 가운데 이들이 참여한 이사회에서 자사주 유동화 의사결정이 잇따라 통과되며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사회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경동제약은 국회 안팎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하던 지난해 기취득 자사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처분해 최대주주 측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코스닥 상장사 경동제약 이사회 특징 중 하나는 전직 대표를 사외이사로 기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동제약은 현재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3명 등 7명의 이사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는데 사외이사 3명 중 2명이 전직 대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이사회에 등판한 박종식 사외이사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대표로 근무했고 2021년부터 5년째 재직 중인 이병석 사외이사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대표로 활동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전직 대표를 사외이사로 기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특히 2명의 전직 대표를 동시에 사외이사로 기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경동제약은 현재 류덕희 명예회장 일가가 회사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오너 일가 인사권 영향 아래 있었던 인물들이 같은 최대주주 측 지배 하에서 사외이사로 재진입해 활동하는 것을 두고 이사회 독립성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거버넌스 평가 업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오너 기업에서는 아무리 독립성을 확보한 사외이사라도 오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감안했을 때 과거 대표를 역임한 인물이 오너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활동할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라면서 "이사회가 어느 수준 이상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 측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직 대표를 기용한 사례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과거 이재복 전 대표와 이성자 전 이사를 감사로 영입한 바 있다. 전임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건 2021년이 처음이다. 이 때는 류덕희 회장이 대표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류 회장 장남 류기성 부회장 단독 경영 체제가 구축되던 시기다. 류 부회장은 2019년 194만주를 증여받아 최대주주(13.9%)에 올랐고 현재 지분을 17.5%까지 불려냈다.
재계 관계자는 "리더십 교체기에는 경영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를 이사회에 배치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다만 이 경우 이사회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지만 경영을 안정화하는 게 우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피 상장사
모토닉의 경우 2024년 김영봉 전 회장 타계 이후 장녀 김희진 당시 전무가 대표로 선임되자 과거 재무임원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바 있다.
지배구조에 다시 굵직한 변화가 생긴 건 지난해 자사주 소각 의무 논의가 본격화하면서다. 류 부회장 단독 체제 구축 이후에도 이사회는 이전과 같이 꾸준히 자사주를 취득했는데 지난해 말부터 자사주 일부를 환인제약 자사주와 맞교환하는 한편 류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송천재단에 출연했다.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의결권이 없지만 지분 10% 미만 내에서 외부에 자사주를 넘기면 권리가 살아난다.
결과적으로 자사주를 외부에 전달함으로써 류 부회장 측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보다 큰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경동제약은 이 밖에도 교환사채(EB) 발행과 임직원 보상 재원 등으로 기취득한 자사주를 활용하기도 했다. 다만 자사주를 집중적으로 처분했던 이 시기는 지난해 국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를 논의하고 있던 때였다. 상법 개정 여파를 피하기 위해 자사주를 서둘러 처분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는 류 부회장 측 힘을 실어줬다. 마침 박종식 전 대표가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새롭게 진입해 사외이사 3명 중 2명이 전직 대표로 채워졌다. 사외이사진은 지난해 말 자사주 처분 관련 이사회 안건에 전원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달 30일 개최되는 주총에는 이사와 감사 보수한도를 정관에 각각 30억원과 2억원으로 명시해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보수 안건 부결 리스크 헤지에도 나섰다.
전직 대표 사외이사가 주식을 가진 점도 눈에 띈다. 이병석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선임 전 주식을 취득한 뒤 일부를 매각해 현재 3만주를 갖고 있다. 19일 종가 기준 1억6320만원 어치다. 박종식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선임과 동시에 2만5000주를 매입해 현재 해당 물량을 그대로 갖고 있다. 1억3600만원 규모다. 경동제약은 이달 주총에서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등 정관 변경 안건도 처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