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거치며 국내 상장사 이사회 지형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대학교수 중심으로 꾸려졌던 상장사 이사회에 법조계 인사들이 집중 기용된 것이 대표적이다. 상법 개정 논의와 행동주의 펀드 확산, 일반주주 권리 강화 흐름이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이사회 내 법률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사회가 단순 자문 역할을 넘어 소송과 규제 리스크를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theBoard는 지난해 말 이후 올 3월 말까지 상장 폐지되거나 신규 상장한 기업을 제외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12월 결산법인 2390개사 사외이사 면면을 비교 분석했다. 해당 상장사 소속 사외이사는 5290명(겸직 포함)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5127명과 비교해 163명(3.2%) 증가했다. 상장사 한 곳당 평균 2.2명의 사외이사를 기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의 경우 상장사 한 곳당 평균 사외이사 기용 수는 2.1명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3개월 사이 법조계 인사 출신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각 사외이사 유형을 △법조계 △산업계 △회계사 △세무사 △학계(대학교수) △연구원 △전직 관료·공공 △금융·투자 △비영리·협회 △기타(이력 미공개)로 대별했다. 사외이사의 현재 주된 직업 및 활동 영역이 기준이다. 전직 판사이지만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는 경우 현 직책을 중시해 전직 관료가 아닌 법조계 인사로 분류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분석
대상 상장사 사외이사 중 법조계 인사는 총 1128명으로 전체 사외이사의 21.3%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1071명(20.9%)에서 57명 증가했다. 올해 주총시즌을 지나면서 증가한 사외이사 3명 중 1명이 법조인이었다. 반면 전직 관료·공공 분야 인사는 같은 기간 517명에서 515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로펌 관계자는 "규제 대응 중심에서 소송·분쟁 대응 중심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항공이 이번 주총에서 법조계 인사를 2명 신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주총에서
대한항공 이사회는 과거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김석동 법무법인 지평 고문과 조현욱 The조은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신규 영입해 사외이사 내 법조계 비중을 16.7%에서 50.0%로 대폭 끌어올렸다.
BNK금융지주와
SK하이닉스,
한국가스공사,
가온전선 등 다양한 상장사들 역시 법조계 인사를 신규 사외이사로 기용했다.
기업들의 법조계 인사 영입 확대는 법률·규제 리스크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이후 상법이 연속 개정되면서 일반주주 보호 강화 기조가 강해지고 행동주의 펀드 압박이 커지면서 이사회 내 법률 전문성 강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근 감사위원은 "이사회 결정에 대해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실제 소송도 제기하면서 운영 부담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소속 인사 등 학계 인사는 증가 추이가 둔화됐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조사
대상 상장사 2390개 사외이사 중 전현직 학계 인사는 2094명으로 전체의 39.6% 비중을 차지했다. 주요 상장사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은 학계 인사라는 의미다. 지난해 말 기준 학계 인사는 총 2087명으로 전체 비중은 40.7% 정도였다. 전체 규모는 증가(0.3%)했지만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1.1%)은 오히려 작아졌다.
학계 인사로 이사회를 꾸린 곳으로는
LG CNS가 대표적이다.
LG CNS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사외이사 4명은 전원 현직 대학교수로 구성돼 있다. 대학교수 출신 사외이사의 경우 이사회 안건을 개념화해 의사결정 과정을 체계화하고 장기 전략 관점에서 논의를 이끈다는 강점이 있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하고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사외이사 연령대는 60대가 가장 많았다. 지난 3월 말 기준 60대 사외이사가 전체의 44.3%를 차지하며 연령대별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올 3월 말 기준 사외이사 평균 나이는 59.8세였다. 풍부한 경영 경험과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국내 기업 인선 기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50대 인사들이 1670명(31.6%)으로 집계돼 60대 뒤를 따랐고 △40대(11.6%) △70대(10.6%) △30대(1.2%) 순으로 많았다.
여성 사외이사 비중도 꾸준하게 늘고 있는 점이 관측됐다. 지난 3월 말 기준 여성 사외이사는 총 568명으로 지난해 말 525명에서 43명 순증했다. 비중은 10.2%에서 10.7%로 늘었다. 일부 기업은 사외이사 전원을 여성만으로 채우기도 했다. 경남제약과 뷰웍스, 솔본, 안트로젠,
펄어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 기업은 사외이사 수 자체가 많지 않아 실제 이사회 다양성 확대 효과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