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금융지주 거버넌스 진화

회장 만드는 시스템의 등장

①신한 사태·KB 사태 이후 달라진 승계 공식…'선발'에서 '육성'으로

조은아 기자

2026-06-08 15:13:56

편집자주

금융지주의 지배구조는 지난 2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회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일반적이던 시기를 지나 신한 사태와 KB 사태를 겪으며 승계 시스템과 이사회 중심 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운영과 주주 권익 보호, 이사회 독립성까지 거버넌스 전반에 대한 시장의 요구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theBoard는 국내 주요 금융지주가 구축해 온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과 각 금융지주가 가진 고유의 지배구조 특징을 짚어본다.
금융지주들이 회장을 뽑는 방식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특정 시점에 이뤄지는 '이벤트'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연중 계속되는 '관리 프로세스'에 가깝다.

변화의 핵심은 '선발'에서 '육성'으로의 전환이다. 예전에는 회장 임기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후임자를 찾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수년 전부터 차기 CEO 후보군을 관리하고 평가한다. 회장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승계 시스템 자체가 금융지주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위기가 바꾼 거버넌스 공식

이 같은 변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금융지주 출범 초기만 해도 승계는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시에는 회장의 리더십과 네트워크가 그룹 경쟁력을 좌우했다. CEO 선임 역시 현직 경영진과 이사회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사외이사와 회추위 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상시 후보군을 관리하거나 비상 상황까지 고려한 승계 체계를 운영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전환점은 금융권을 흔든 대형 사건들이다. 2010년의 신한 사태는 금융권에 지배구조 리스크를 각인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내 대표 금융그룹에서 벌어진 경영권 분쟁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의 KB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두 사건은 리더십 공백과 지배구조 불안이 경영 안정성은 물론 기업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CEO 승계를 특정 인물의 문제로 볼 수 없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금융권에서는 회장을 잘 뽑는 것보다 승계 과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요 금융지주들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승계 체계를 대폭 손질했다. 후보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회추위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비상 상황에 대비한 승계 계획도 마련하기 시작했다.

챗GPT를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

◇후임자를 찾지 않는다, 미리 키운다

최근 금융지주의 승계 체계는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졌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회장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는 CEO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회장 임기 만료가 가까워질 때 후보군을 논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평상시부터 후보군을 관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내부 CEO 후보군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계열사 대표나 주요 임원들의 경영 성과와 리더십 역량, 조직 운영 능력 등을 점검하면서 차기 경영진 후보군을 관리한다.

회장 선임 과정 역시 단계화됐다. 롱리스트를 구성한 뒤 평가를 거쳐 숏리스트로 압축하고 인터뷰와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과거보다 절차가 복잡해진 만큼 투명성과 객관성이 한층 강화됐다.

후보 육성 방식도 한층 체계화됐다.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과 보험, 카드 등 다양한 계열사를 경험하도록 하거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치게 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회장을 뽑는 시스템'에서 '회장을 만드는 시스템'으로의 진화다. 과거 금융지주들이 은행 중심 구조였던 것과 달리 현재는 비은행 포트폴리오가 확대된 만큼 차기 CEO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은행장 출신이 자연스럽게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증권과 보험, 자본관리, 글로벌 사업 등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졌다"며 "후보군 육성 자체가 장기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의 변화를 단순한 제도 개선 이상으로 보고 있다. 과거 금융지주 경쟁이 실적과 자산 규모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자본관리와 주주환원, 건전성에 이어 거버넌스 역량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KB금융이 차기 회장 승계 절차를 조기에 시작하고 외부 후보에게 문을 넓힌 것도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처럼 단순히 후임자를 결정하는 차원을 넘어 승계 시스템 자체를 시장에 설명하고 검증받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