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금융감독원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증권신고서에 정정을 요구하면서 대한항공이 13일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25일 제출한 최초 신고서(1374쪽)는 정정 과정에서 1535쪽으로 161쪽 늘었다.
보완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합병 심의 절차, 장기간 일정에 대한 설명, 투자위험요소 추가다. 모두 아시아나항공 주주가 오는 8월 12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 찬반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다.
◇"가이드라인 준용했다"…절차 보완
가장 큰 보완은 합병 심의 절차에 대한 설명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 13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계약 체결을 승인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흡수합병하는 구조다.
이번 합병은 지배주주가 자회사를 흡수하는 계열사 간 합병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 지분 63.88%를 취득해 최대주주가 됐다. 지배주주가 나머지 지분을 흡수하는 형태인 만큼 소액주주와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상법 개정 이후에는 기업조직개편 과정에서 이사회의 의사결정 절차 자체가 중요해졌다. 법무부는 '기업조직개편 시 이사의 행위규범 가이드라인'을 통해 특별위원회 설치, 독립적 외부전문가 검토, 주주에 대한 충실한 정보 제공 등을 권고하고 있다.
두 회사는 별도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대신 이사회 내 ESG위원회에 그 역할을 맡겼다. 대한항공 ESG위원회는 표인수 위원장과 김석동·송재용 위원, 아시아나항공은 김현정 위원장과 이인형·장민 위원으로 구성됐다.
기존 신고서에는 ESG위원회가 특별위원회 기능을 수행했고 관련 심의를 거쳤으며 외부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위원별 전문성이나 구체적인 검토 결과는 제시되지 않았다.
금감원 요구에 따라 ESG위원 역량에 대한 설명도 추가됐다. 정정 신고서에는 위원별 전문성 체크리스트가 새로 실렸다. 합병 관련 학위·전문자격과 실무경력, 상장회사 이사회 경험, 주주보호 관점의 판단 능력, 외부 회계·법률 자문을 평가할 전문성 등 5개 항목이며, 양사 위원 6명 모두 이를 충족한 것으로 기재됐다.
위원별 이력도 보완됐다. 대한항공은 미국 변호사와 전 금융위원장, 경영학 교수 등을 ESG위원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고, 아시아나항공은 변호사와 자본시장·금융 연구기관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체크리스트 작성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다. ESG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작성된 것인지, 금감원 정정요구 이후 보완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 출처는 '합병당사회사 제시'로만 기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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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검토도 구체화…판단 근거 공개
외부전문가의 독립성 판단 근거도 한층 구체화됐다. 표인수 대한항공 ESG위원장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재직 중이며, 태평양은 이번 합병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법률자문사를 맡고 있다.
기존 신고서에도 ESG위원회가 이해상충 여부를 검토했다는 내용은 담겨 있었다. 김앤장은 표 위원장이 태평양의 자문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합병 성사 여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정 신고서에는 검토 절차와 판단 근거가 추가됐다. 김앤장은 표 위원장이 태평양 고문인 만큼 별도의 독립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ESG위원 전원이 사외이사인 점과 표 위원장이 태평양의 합병 자문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종합해 독립성이 확보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대한항공은 태평양으로부터 표 위원장이 자문 업무에 관여한 사실이 없으며 관련 정보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는 확인서도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ESG위원회를 활용한 절차가 법무부 가이드라인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특별위원회를 반드시 별도 임시위원회 형태로 설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독립적인 위원회가 회사와 주주 관점에서 거래를 검토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이미 사외이사 중심의 상설 ESG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었고, 합병계약 체결 전 독립적인 사전 심의가 필요했던 점 등을 고려해 ESG위원회에 특별위원회 기능을 부여했다고 덧붙였다.
◇주총부터 합병까지 4개월…왜 길어졌나
두 번째 보완은 합병 일정에 대한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 임시주주총회는 8월 12일 열린다. 합병기일은 12월 16일, 합병등기 예정일은 12월 17일이다. 주주총회 이후 실제 합병 완료까지 약 4개월이 걸린다.
기존 신고서에는 이 기간이 길어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정정 신고서에는 관련 배경이 추가됐다. 대한항공은 이 일정이 "일반적인 합병 사례보다 상대적으로 긴 수준"이라고 인정하며 항공사 합병 특성상 국토교통부와 해외 41개국에서 필요한 인허가 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 등 일부 국가는 노선 허가와 운영기준 변경, 슬롯 배정 등에 5~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통합 항공사 출범 최소 6개월 전에 해외 항공당국에 인허가를 신청하는 것을 목표로 일정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해외 항공당국이 합병 의사결정 증빙으로 주주총회 의사록 제출을 요구할 가능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 이후 해외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는 일정으로 설계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변수까지…투자위험 추가
세 번째 보완은 투자위험요소다. 이번 정정에서 가장 많은 내용이 추가됐다. 우선 '지주회사 행위제한 요건에 관한 위험'이 새롭게 포함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12월 한진칼 손자회사로 편입되면서 공정거래법상 행위제한 규정을 적용받게 됐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보유할 경우 지분 전량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주회사 한진칼 아래 대한항공, 그 아래 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은 증손회사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한진세이버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요건을 맞추기 위한 유예기간은 올해 12월 11일까지다. 합병기일인 12월 16일보다 닷새 앞선다.
합병이 예정대로 마무리되면 아시아나항공이 소멸하면서 해당 지분은 대한항공으로 넘어간다. 다만 일정이 지연될 경우 유예기간 만료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유예기간 2년 연장을 신청하거나 합병 전 관련 지분을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일 또는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종속회사 간 사업위험 중복 및 통합 관련 위험'도 새롭게 추가됐다. 대한항공은 계열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을 2027년 1분기 내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지난 4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운영기준 변경 인가를 취득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