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이사회는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권재중 SBI저축은행 사외이사
(사진)는 이사회의 역할을 '좋은 질문'으로 정의했다. 오랜 기간 금융권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를 지낸 그는 숫자 하나를 파고드는 것보다 숫자가 만들어진 과정과 구조를 묻는 질문이 더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단기 실적이 늘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익의 질은 좋은지, 미래 손실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현재의 의사결정이 장기적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익 늘었나"보다 "이익의 질"…의사결정 과정과 근거 물어야
권 이사는 올해 4월 SBI저축은행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교보생명이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된 직후 이사회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새로 선임됐다.
권 이사는 재무 전문가로 손꼽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SC제일은행 상근감사위원, 스탠다드차타드금융지주 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신한은행에서 감사본부장과 CRO, CFO를 맡았고
JB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에서도 잇달아 CFO를 역임했다. 연구기관에서 출발해 감사와 전략, 리스크, 재무를 두루 경험했다.

그는 SBI저축은행이 현재 어디에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 기존 전략과 목표를 이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부분은 제대로 평가하되 보완할 대목은 질문을 통해 점검할 계획이다. 권 이사는 "질문이 단순한 의문 제기를 넘어 챌린지가 될 수도 있다"며 "현시점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 이사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경영진 시절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도 단기 실적이 아니라 중장기 방향에 관한 것이었다. 실적이 개선되거나 악화한 이유는 숫자를 분해해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성과가 지속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일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답변하는 입장에서는 '이 숫자는 괜찮습니까'보다 '회사가 잘되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리스크가 통제되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훨씬 어려웠다"며 "숫자는 의사결정의 결과인 만큼 그 과정이 합리적이고 전략적이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가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기는 어렵다. 권 이사는 이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은 주주와 이사회, 경영진, 직원의 이해관계가 기업가치라는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만드는 유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면 과거 IR에서 만난 한 해외 투자자는 CEO가 전체 보상의 최소 10%를 자사주 매입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며 "반드시 정답은 아니지만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유인 구조"라고 평가했다.
◇"균형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CFO의 핵심은 자본배분
권 이사는 CFO를 단순한 회계 책임자가 아니라 숫자를 전략적으로 해석하는 자리로 규정했다. CFO의 가장 큰 책임이자 권한으로는 자본배분을 꼽았다. 금융지주에서는 주주환원 규모도 중요하지만 내부 자본을 자회사와 사업 부문에 어떻게 나눠줄지가 더 근본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것이다. 자본을 어디에 배분하느냐에 따라 각 사업의 성장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은 수익성이다. 다만 금융회사의 수익성은 당장의 이자이익이나 회계상 이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대출에서는 향후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익스포저와 포트폴리오가 내포한 위험을 수익성에 반영해야 한다. 권 이사가 RoRWA(위험가중자산이익률)를 비롯한 리스크 조정 수익성 지표를 중시한 이유다. 그는 "명목적인 수익성이 아니라 리스크를 조정한 수익성과 자산 성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 축적과 주주환원 사이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주주는 규제상 필요한 자본을 제외한 나머지를 환원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감독당국은 금융회사가 위기에 대비해 충분한 자본을 쌓기를 원한다. 양쪽의 요구를 조율해 적정 자본비율을 정해야 한다.
권 이사는 이 균형점을 이미 존재하는 정답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균형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며 "교과서적으로는 균형점이 정태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정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토대로 동태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한쪽을 희생하기보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활발한 소통과 협의를 거쳐 가장 합리적인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장과 리스크가 충돌할 때는 중장기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당장 이익이 나는 성장에 눈이 가기 쉽지만 리스크는 대개 뒤늦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을 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명목상 ROA만 보면 5% 성장이 최선일 수 있지만 리스크를 고려하면 3% 성장이 더 나은 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 이사는 국내 금융회사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로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꼽았다. 좋은 거버넌스는 권한을 늘리거나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연결하는 문제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CEO에게는 상당한 권한이 집중돼 있지만, 그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Accountability)이 분명하게 작동해야 한다"며 "반대로 여러 법령에 따라 높은 책임을 요구받는 이사회에는 그에 합당한 권한이 부여돼야 하며, 스스로 이를 합리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좋은 거버넌스는 누군가를 견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경고등 켜졌다면 이미 늦어"…저축은행 신용위험 주시
금융지주와 비교하면 저축은행에서는 신용위험을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자본과 포트폴리오 관리의 중요성은 같지만 저축은행은 고객의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소액 여신이 많아 경기 변동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을 경험해 저축은행업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일반 은행보다 변동성이 크고 신용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만큼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주의 깊게 보는 항목은 신용위험과 대손비용이다.
공식적인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기 전에 위험을 포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는 "자동차 계기판에 노란불이나 빨간불이 들어왔다면 이미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고장이 확인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해야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심사가 지나치게 순조롭고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는 분위기 자체도 위험 신호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조직 전체가 지나치게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 이사가 사외이사로서 가장 경계하는 답변은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말이다. 기술과 AI,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고 경쟁과 규제 환경도 달라진 만큼 과거에 합리적이던 방식이 지금도 최선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탓이다. 그는 "'왜 이것이 지금도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에 '원래 그랬다'는 답은 충분하지 않다"며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대주주와의 시너지와 회사의 독립성을 어떻게 균형 지을지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으로 봤다. 권 이사는 "구단주가 바뀌었다고 감독을 바꾸고 선수를 대대적으로 교체하면 좋은 팀이 될 수 없다"며 "정당한 이유와 평가, 대안이 있을 때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수 이후 경영진 변화는 거의 없었다며, 조심스럽게 한 팀이 되도록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