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작업이 예년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가 각각 대표이사 취임을 앞둔 시기에는 전년도 6~7월께 후계 구도가 드러났다. 반면 조 대표의 임기 만료를 8개월가량 앞둔 현재까지 차기 대표 후보는 뚜렷하게 압축되지 않았다.
과거보다 차기 대표를 둘러싼 선택지가 애매해진 점이 의사결정을 늦추는 배경이다. 외부 출신 사장이 후보군에 합류했고 복수의 사장·부사장 체제가 형성됐다. 대표 선임 공식도 이전보다 복잡해졌다는 분석이다. 내부적으로는 각자대표 혹은 공동대표 체제는 경영상 혼선을 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단독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6개월 명문화했지만 실제론 '주총 8~9개월 전 윤곽'
유한양행은 통상 대표 임기 만료를 상당 기간 앞두고 차기 경영자를 정해왔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는 차기 대표 선임에 앞서 최소 6개월 이상의 최고경영자(CEO) 승계 준비 기간을 두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관행은 이보다 빨랐다. 이정희 의장과 조욱제 대표 모두 정기 주주총회를 약 8~9개월 앞둔 시점에 차기 대표 윤곽이 드러났다.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를 선임한 뒤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절차를 밟지만 실질적인 후계 구도는 전년도 인사를 통해 먼저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이정희 의장이 대표에 오를 당시에도 취임 전년도인 2014년 7월 총괄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차기 대표 후보로 부상했다. 이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현 수장인 조욱제 대표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유한양행은 2020년 6월 말 당시 조 부사장을 총괄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정희 당시 대표의 임기가 2021년 3월 끝날 예정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약 9개월 전 후계 구도가 정리된 셈이다. 조 사장은 이듬해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조 대표는 2027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과거 사례를 적용하면 올해 6~7월께 차기 대표 후보가 가시화될 시점이지만 별도 후계 인사나 후보 압축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한양행 내부에서는 통상적인 제약업계 휴가철이 지난 9월께 차기 대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한다.
유한양행 이사회에서도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차기 대표이사 지목은 현재 대표가 하고 이사회가 승인하는 형태다. 조욱제 대표의 의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정이 됐다면 이정희 의장과 상의가 이뤄졌을테지만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라는 입장이다.
이정희 의장은 더벨과의 통화에서 "차기 대표 관련해 모르는 이야기다"고 답했다. 같은 취지의 질문에도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이사회 의장조차 차기 대표 선임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확인할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내부 승진 공식 변화…외부 출신까지 늘어난 선택지
유한양행 대표 선임이 관행보다 늦어지는 배경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개입된 복잡해진 셈법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복수 부사장 가운데 한 명이 대표로 승진하는 내부 승진 구도가 비교적 뚜렷했다. 내부 인사 중심으로 부사장단이 꾸려진 것과 다르게 현재는 외부인사까지 합세한 상황이다.
김열홍 사장은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로 R&D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2023년
유한양행에 합류해 불과 4년밖에 몸담지 않았다. 기존 내부 승진 관행과 차이가 있다. 내부 결속을 다져야 할 대표이사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병만 부사장과 유재천 부사장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각각 경영관리본부와 약품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내부 출신 임원이다. 외부에서 영입한 R&D 총괄 사장과 내부 출신 부사장들이 동시에 후보군에 포함되면서 과거처럼 직급이나 승진 순서만으로 차기 대표를 가늠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각자 대표체제 혹은 공동 대표체제가 거론됐지만 현재로선 단독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두명의 대표를 두게 되면 경영상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자리한다.
외부출신이지만 R&D를 강화하는 흐름에서 김열홍 사장이 수장에 오르면 첫 외부인사 CEO 시대를 열게 된다. 최근 진행된 임원 워크샵에서도 김열홍 사장 역할에 무게가 실렸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내부 결속력 차원에서 도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유한양행 내부적으로는 휴가 시즌이 끝나는 8월 말~9월초 이사회를 통해 차기 대표이사를 확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