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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드 인터뷰

"좋은 이사회, 독립성·다양성 다음은 심리적 안전감"

한승엽 이화여대 교수 "감시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합리적 보험제도 변화 필요"

조은아 기자

2026-07-29 10:49:59

"독립성과 다양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내든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전감을 바탕으로 경영진과 함께 회사의 해법을 찾는 전략적 파트너가 돼야 합니다."

한승엽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사진)는 AIA그룹 보드 워크숍에서 접한 내용을 소개하며 이사회가 독립성과 다양성을 넘어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과 '전략적 파트너십(strategic alliance)'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이사를 수동적 감시자에 머물게 하지 말고 회사를 깊이 이해해 장기 성장을 함께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 교수는 금융감독 당국에서 보험 리스크 제도를 다루고 학계에서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AIA생명과 흥국화재 독립이사로 선임됐다.

◇공개된 의사록 밖에서 움직이는 이사회

한 교수가 이사회에서 체감한 건 공개된 의사록에 드러나지 않는 업무량이었다. 안건 하나가 70쪽, 전체 자료가 700~800쪽에 이르기도 했다. 이사회에 앞서 소위원회와 설명 세션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안건을 수정·보완한다.

다만 한 교수는 사전 검토만으로 충실한 이사회 운영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사전 설명이 이사회에서 질문이 나오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오히려 토론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사들의 질문이나 문제 제기를 담당 직원의 잘못으로 보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안건이 수정되거나 통과되지 않더라도 이사회를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확인됐다고 받아들이고, 회사가 이를 개선·보완하는 건설적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험사에는 회계·계리뿐 아니라 법률과 정보기술(IT), 금융서비스 등 여러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모든 독립이사가 보험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비전문가도 질문과 자료 요청을 통해 회사 설명을 검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보험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교수는 "너무 몰라 단순한 판단만 해서도 안 되지만 회사나 산업에 지나치게 익숙해 기존 관행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며 "현실을 이해하되 내부 논리에 동화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균형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사회의 네 가지 핵심가치'

AIA그룹은 태국의 리더십센터에서 각국 대표이사와 이사회 구성원을 모아 보드 워크숍을 연다. 한 교수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그룹이 거버넌스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다고 봤다.

이사회의 네 가지 핵심가치(four pillars)도 이 워크숍에서 접했다. 강연을 맡은 세계적인 거버넌스 전문가 디디에 코신(Didier Cossin)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 교수는 이사회가 독립성과 다양성, 심리적 안전감, 전략적 파트너십의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소개했다. 한 교수는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첫 단계는 독립성이다. 독립성이 정착된 뒤에는 현재 우리나라처럼 성별과 전문 분야가 다른 사람을 모으는 다양성이 중시된다. 다만 한 교수는 "다양한 사람을 모았다고 여러 관점이 저절로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연한 조직문화 속에서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낼 수 있어야 다양성이 실제 토론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세 번째 단계인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이사회 의장의 역할도 강조했다. 이사들과 개별 면담이나 식사 등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이사회에서 말하지 못한 의견을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단계는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한 교수는 "과거 독립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내이사와 독립이사를 대립 구도로 보고, 독립이사를 외부에서 감시·견제하는 수동적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독립이사도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만큼 감시와 견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한 전제로 회사와 독립이사의 상호 노력을 제시했다. 그는 "회사는 독립이사를 신뢰하고 사업과 전략, 내부 성과지표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독립이사도 경영진의 전략과 사업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가정·유동성·규제…보험사 이사회가 물어야 할 것

한 교수는 보험업의 특성상 이사회가 단기 실적보다 회사의 장기적인 존속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고 봤다. 지금 내린 의사결정의 영향이 경영진과 독립이사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수십 년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험사 이사회가 우선 살펴야 할 사안으로는 기초가정의 적정성과 재무건전성을 꼽았다. IFRS17에서는 미래 보험금과 사업비 등을 회사가 가정해 추정한다. 작은 가정 변화도 누적되면 당기 손익과 지급여력비율(K-ICS)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낙관적으로 가정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한 뒤 문제가 없을 때 이익을 되돌리는 편이 중립성(neutrality) 개념에도 부합한다"며 "이사회는 기초가정이 합리적인지, 그 변화가 자본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발생주의상 이익과 실제 현금흐름의 차이도 주요 점검 대상이다. 보험사가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식한 보험수익이 당장 들어오는 현금을 뜻하지는 않는다. 보험료가 장기에 걸쳐 들어오는 동안 계약 초기에 모집수당 등으로 많은 현금이 빠져나가는 만큼 장기 재무건전성과 함께 단기 유동성도 점검해야 한다고 짚었다.

책무구조도와 자체위험·지급여력평가제도(ORSA), 제3자 리스크관리 등 규제·컴플라이언스 대응 체계도 강조했다. 이사회가 세부 규제를 직접 집행할 수는 없지만 규제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과 체크리스트가 있는지, 어떤 주기로 점검·보고하는지, 체계가 실제 작동하는지도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감독 당국과 학계, 회사 이사회를 모두 경험하면서 규제를 만드는 쪽과 적용받는 회사의 시각 차이도 체감했다. 감독 당국은 제도가 악용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결과 정상적으로 경영하는 회사까지 자신과 무관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규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간극을 줄이려면 보험사의 노력과 함께 합리적 제도 변화도 필요하다"며 "IFRS17 도입 후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로 인한 배당 제한 이슈 등 보험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는 감독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성과를 주주와 나누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만큼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의 목적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국회계기준원에도 능동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IFRS17을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국내의 문제와 업계 의견을 모아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험사에만 올바른 경영과 책임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회사가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주변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