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는 소비 흐름과 자본의 움직임이 가장 빠르게 교차하는 현장이다. 상품 하나, 브랜드 하나의 흥행이 기업의 실적은 물론 투자자들의 시선까지 좌우한다. 그럼에도 유통 현장에서 포착되는 변화는 숫자 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공식 발표 이전의 움직임, 기업과 투자자 간의 미묘한 온도차, 전략을 둘러싼 고민들은 대부분 물밑에서 진행된다. 더벨이 유통 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사와 현안, 그리고 변화의 조짐을 담아내고자 한다.
CJ올리브영이 올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북미 사업을 총괄하는 CJ아메리카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인다. 주요 현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은 물론 공동대표 2인이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리브영USA에도 김진식 CJ아메리카 공동대표가 이사회에 합류해 있다.
올리브영의 미국 1호 매장 준비 과정에도 CJ아메리카의 공헌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에서 먼저 사업을 확대한 식품·물류·콘텐츠 계열사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그룹 북미 사업이 'K-라이프스타일' 중심의 성장 단계로 도약하면서 그룹 차원의 지원 기능도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올해 1월 이사진 합류…권가은·이진희와 3인 이사회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리브영USA의 이사회에는 김진식 CJ아메리카 공동대표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리브영USA가 올해 1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제출한 기업정보보고서(Statement of Information)를 보면 이사진은 권가은 미국법인장, 이진희 CJ올리브영 플랫폼사업총괄 부사장, 김진식 공동대표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올리브영 미국 사업을 이끌고 있는 권가은 법인장은 최고경영자(CEO)를 겸한다. 이를 신성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보좌하고 있다. 김진식 CJ 아메리카 공동대표가 처음부터 올리브영USA 이사회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출범 초기에는 황윤일 CJ제일제당 고문이 이름을 올렸다.
첫 매장 출점과 온라인몰 구축 등 사업 준비가 본격화되던 시기 김 공동대표가 합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사회에서도 구성 역할 분담이 드러난다. 권 법인장은 미국 현지 사업 실행을 책임지고, 이 부사장은 본사에서 온·오프라인 플랫폼 사업을 총괄한다. 김 대표는 CJ아메리카 공동대표로서 그룹 차원의 미국 사업 경험과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위치다.
CJ아메리카 경영진이 미국 계열사 이사회에 참여하는 구조는 올리브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종환 공동대표는 CJ 대한통운 미국 법인인 CJ 로지스틱스 아메리카(CJ Logistics America)와 콘텐츠 제작사인 피프스 시즌(Fifth Season) 이사를 겸하고 있다. 김진식 공동대표도 CJ 포디플렉스(CJ 4DPLEX America)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J아메리카는 미국 내 각 계열사를 직접 운영하는 조직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룹의 현지 전략을 조율하고 계열사 간 사업 기반을 연결하는 성격이 강하다. CJ아메리카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사업 영역도 식품·외식, 바이오, 물류, 콘텐츠 등 그룹의 미국 사업 전반을 포괄한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김진식 공동대표가 그룹 차원의 대미 투자 비전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진식 CJ아메리카 공동 대표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글로벌 K 라이프스타일 비전' 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 CJ>
이 같은 역할은 올리브영의 미국 첫 매장 준비 과정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각종 인허가 등 지역별 규제 환경이 한국과 달라 매장 개점에 필요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한국에서는 통상 수개월 안에 가능할 수 있는 출점도 미국에서는 반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두고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리브영 역시 패서디나 1호점 개점 당시 오랜 준비를 거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29일 출점을 목표로 6개월 이상 공을 들였으나 일정이 빠듯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올리브영의 경우 현지 사업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만큼 독자적으로 출점을 준비하진 않았다. 이미 미국에서 기반을 확보한 CJ아메리카의 네트워크와 경험이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CJ아메리카는 현지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올리브영이 어떤 사업자인지 설명하고, 미국 진출이 지역 시장과 경제에 미칠 수 있는 효과를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초기에는 올리브영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현지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단 미국 진출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업 준비 과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CJ그룹이 이런 지원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미 구축한 미국 사업 기반이 있다. 그룹은 1978년 미국에 첫 거점을 마련한 뒤 식품과 물류, 콘텐츠, 바이오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북미 누적 투자액은 9조7000억원에 달하며 33개 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지 고용 인원은 1만2000명을 넘어섰다.
CJ는 올해부터 북미 사업을 K라이프스타일 중심의 ‘2단계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 식품·물류·콘텐츠 사업에서 확보한 사업 기반을 뷰티 등 신규 영역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올리브영은 북미 선두권 K뷰티 플랫폼으로 육성하고 대형 리테일러와의 기업간거래(B2B)를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J아메리카는 올리브영USA의 사업 준비 과정에서 현지 시장과 정부 관계자들과 소통을 도맡는 대관 역할을 한 셈"이라며 "미국 오프라인 사업은 각종 규제로 인허가 문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CJ아메리카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