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은 본인을 포함, 단 2명의 이사를 콜마비앤에이치(BNH) 이사회에 진입시키려 했다.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려면 최소 5명 이상의 우호 이사를 투입해야 하는데 2명은 부족한 수다. 작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영풍·MBK연합은 고려아연 이사회 무력화를 위해 과반인 14인 이사 선임을 시도한 바 있다.
이는 윤 부회장이 창업주이자 부친인 윤동한 회장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일단 최소의 이사회 재편을 통해 윤여원 대표 체제에 대한 견제 발판을 마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윤 회장이 이 같은 움직임조차 '강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법적 대응에 나서자 콜마BNH 분쟁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업계에선 윤 부회장이 콜마BNH 이사회에 진입한 뒤 윤여원 대표를 해임시키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복귀하려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콜마BNH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해임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윤 부회장이 필요로 하는 최소 우군 이사 수는 몇 명일까.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후 콜마BNH 이사회는 총 6명인 체제로 구성됐다. △사내이사 2명(윤 대표, 조영주 경영기획총괄 상무) △사외이사 2명(오상민 법무법인 세한 대표변호사, 소진수 법무법인 율촌 공인회계사) △기타비상무이사 2명(윤 회장, 김현준 퀸테사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이다. 이 가운데 김현준 대표(기타비상무이사)만이 콜마BNH 이사회 속 유일한 윤 부회장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김현준 대표가 속한 퀸테사인베스트먼트는 윤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재무적 투자자(FI)다.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 과반수의 동의로 충족된다. 현재 6명 이사 중 1명이 확보된 상태고, 여기에 더해 윤 부회장이 최소 5명의 이사를 콜마BNH 이사회에 투입시켜야 과반을 확보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가정 시 이사 총 인원 11명에 윤 부회장 편에 서는 이사는 6명, 즉 '5대 6'이 확보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례에서 작년 영풍·MBK 연합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13인 이사회의 무력화를 위해 14명 이사 선임안을 제시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콜마BNH 정관에 따르면 '회사의 이사는 3인 이상으로 한다'는 규정만이 있다. 최대 이사 수 한도는 없다. 이에 따라 경영권 분쟁 속에서 콜마BNH 이사회 규모는 고려아연처럼 엄청난 규모로 늘어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윤 부회장이 콜마BNH의 이사회에 선임하려고 한 이사 수는 자신과 이승화 전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 등 두 명 뿐이다. 윤 부회장은 지난 5월 2일 대전지방법원에 본인 및 이승화 전 부사장의 콜마BNH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다루는 콜마BNH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청구했다. 윤 부회장이 콜마BNH의 이사회 재편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됐으나 사실상 이사회 장악을 위해서는 적은 수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 부회장이 창업주인 윤 회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정면승부'를 피하고자 수위를 조절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했다. 이사회 구성상 자신과 측근 1인만을 입성시켜 이사 수를 기존 6명에서 8명으로 늘리면 윤 부회장 측은 '5대 3'으로 소수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윤 회장을 설득해 중립을 돌려놓거나 사임·불참 시 '4대 3'의 구도를 만들 수 있다. 윤 부회장으로서는 본격적으로 싸워 주도권을 가져올 여지가 생긴다. 즉 이사 2인 투입은 이사회 재편의 '1차 시도'로, 최소 단위의 인원 투입이 가장 리스크가 적고 협상의 여지를 남기는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 5월 윤 회장이 돌연 윤 부회장을 상대로 주식 반환 소송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윤 회장은 2019년 부담부증여 방식으로 넘긴 콜마BNH 지분을 되찾기 위한 법적 조치에 착수했고 이는 윤 부회장의 2인 이사회 진입조차 강력한 '도전'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향후 윤 부회장이 추가적으로 3명 이상의 이사 선임을 시도할 경우 '수위 조절' 단계를 넘어 윤 회장과의 관계가 사실상 파국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사회 구성 변화는 곧 두 사람 간 경영권 전쟁의 전면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 부회장의 타깃은 명확히 여동생 윤 대표였고 아버지 윤 회장과의 대결 구도는 가급적 피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며 "윤 부회장은 단독 대표 체제의 부진한 실적을 문제 삼아 경영진 교체를 추진하려 했지만 윤 회장이 남매 간 경영권 다툼에 직접 개입하면서 윤 부회장의 태도 역시 보다 강경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