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제도가 속속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건 당사자 기업의 의지다. 기업 스스로 거버넌스를 주주 친화적으로 바꿔갈 노력이 없다면 거버넌스 개선 자체는 요원할 수 있다. 미국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에서 일본과 한국 시장 리서치를 총괄하고 있는 우에노 나오코 VP(Vice President of Research & Engagement·사진)는 서면 인터뷰에서 실용적 개선책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우에노 VP는 2010년 글래스루이스에 합류했다. 일본 리서치 팀에서 일본 기업 거버넌스 분석가로 경력을 시작,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분야를 확대했다. 2020년 글래스루이스 재팬이 설립되면서 일본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도쿄 사무소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우에노 VP는 11일 법무법인 율촌이 개최하는 거버넌스 세미나 스피커로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우에노 VP는 우리나라 정부와 입법부가 주도하고 있는 상법 개정 시도들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우에노 VP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가 일반주주 이익을 고려하며 경영진을 감독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 발전"이라고 평가하면서 "거버넌스 기본 프레임워크로 이사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사회와 산하 위원회 독립성을 유지하며 이사회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사회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진의 독립성과 적합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전직 고위 관료 출신과 전현직 교수로 채워진 기업 사외이사진이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따져볼 만한 일이다. 우에노 VP는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는 사외이사가 단순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 경험과 재무 지식 등과 같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지=글래스루이스 홈페이지] 특히나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오너 집단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는 "복잡한 교차출자 구조를 가진 재벌 기업들은 일부 지분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런 구조 하에서는 일반주주가 이사회에 의견을 전달하기가 어렵다"면서 "재벌 시스템은 여러 측면에서 일반주주에게 불리하다. 오너 일가의 과도한 영향력을 억제하고 일반주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시장 차원의 규제가 계속 강화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기업이 스스로 거버넌스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강조한 건 액티브 펀드 역할이다. 주주 제안 등을 통해 기업 소통 채널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주주 간 대화를 통해 자본 효율성 방안을 고민할 수 있고 최선의 주주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우에노 VP는 "펀드가 기업과 주주 간 대화의 촉매제가 된다면 이는 (시장에서) 또 다른 장점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거나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다"면서 "펀드 측의 주장이 항상 전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사회는 그 관점 중 일부가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통찰력이나 제안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벌 집단의 존재로 일반주주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한국 시장에서는 펀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우에노 VP가 주문한 건 실질적 정책의 개선이다. 주주총회 개최 전 정보 제공 기간을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등 서구 시장에서는 주총 개최 최소 한 달여 전 관련 자료를 입수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2주 전에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총 개최 직전 통보되는 경우도 있다. 우에노 VP는 "기술적인 문제이지만 정보 공개에 적시성과 완전성을 기하는 건 투자자 유치를 위해 꼭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에노 VP는 "일본의 경우에도 과거 많은 기업들이 주총 2주 전에 독립 감사보고서와 주총 자료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3~4주 전에 관련 정보들을 오픈함으로써 주주들로 하여금 의결권 행사 고려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했다"며 "일본 시장은 형식적 절차를 넘어 실질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이러한 개선 내용과 그 절차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이달 11일 '한국-불확실한 시대 속 지배구조를 통한 신뢰 강화'라는 주제로 기업 거버넌스 세미나를 개최한다. 우에노 VP는 해당 세미나 중 '한국 시장의 행동주의 활성화와 일본 사례로부터 교훈' 주제의 두 번째 세션 패널로 참여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포함, 투자자와 기업 간 대화와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고 해소되는지에 대한 논의에 참여해 다양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