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뜨겁다. 반도체와 방산 기업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고 정부와 국회가 주도하는 거버넌스 개혁이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면서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오아시스매니지먼트 설립자 세스 H. 피셔(Seth H. Fisher·사진) CIO(최고투자책임자)는 더벨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업 거버넌스 개선 촉진을 위해 당근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아시스가 현재 운용하는 자금은 83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오아시스는 현재 홍콩에 본사를 두고 미국 오스틴과 일본 도쿄, 케이만 제도 등에 오피스를 두고 세계 각국 시장에 투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뉴욕 소재 예시바대(Yeshiva Univ) 정치학과를 졸업한 피셔 CIO는 글로벌 대체투자 하우스 하이브리지캐피탈매니지먼트를 거쳐 2002년 오아시스를 창업했다.
피셔 CIO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그는 "(입법 기관이) 주도하는 지배구조 변화는 시장의 공정 관행을 촉진하고 주주 권리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하면서도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이 10년간 26% 수준으로 글로벌 최저 수준"인 점을 지적했다. 앞으로 "독립 사외이사 확대와 내부거래 투명 공시 등 제도적 실행력을 높여 나가는 게 관건"이라고 봤다.
그러려면 거버넌스 개혁에 따르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피셔 CIO는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조치는 긍정적인 출발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제도적 규제에 치우친 면이 있어 기업과 오너집단 재벌이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인센티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시장 매력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이미지=오아시스매니지먼트 홈페이지] 실제 오아이스가 그간 거둔 성과는 기업과 대립하기보다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기업 성과와 거버넌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이다. 경영진이 대화에 열려 있고 주주가 이사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매커니즘이 마련돼 있다면 기업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세웠다. 피셔 CIO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기업의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자본의 효율성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은 제도 자체 도입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국회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한 달여 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수 증원 등의 내용이 담긴 2차 상법 개정안을 선보였다. 현재는 자사주 의무 소각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시장은 내년 주총 시즌 변화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셔 CIO는 “건전한 기업 행동과 더 나은 지배구조를 장려하는 조치들에 고무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 자본시장에) 투명성 요건, 경제적 인센티브 등이 제도화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좋은 지배구조는 단순한 제도적 장식이 아니라 기업 성과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해관계자 이익의 일치가 확보된 시장에선 주가가 기업의 실적을 즉각 반영하는 경고등 역할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 등이 LG화학을 대상으로 주주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얼라인파트너스가 스틱인베스트먼트 대상으로 캠페인을 꾸리는 등 국내외 운용사가 국내 자본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투명한 소통과 이사회 책임성이 담보된 시장에서는 기업과 주주, 나아가 직원과 경제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기업 오너 집단의 의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피셔 CIO는 "재벌 집단은 한국의 결정적 강점이자 동시에 도전적인 존재"라고 진단하면서 "(이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제한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함으로써 성장을 막고 투자를 단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통제와 강력한 성장동력,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기준 사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피셔 CIO에게 여전히 한국 시장 매력은 상당하다. 피셔 CIO는 "일본은 10년 전만 해도 많은 기업이 거버넌스 개념조차 몰랐지만, 지금은 사고방식과 성과가 모두 달라졌다”면서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배분과 소수주주 보호 측면에서 개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 상황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다.
피셔 CIO는 이달 11일 법무법인 율촌이 영국 기업 거버넌스 자문사 스퀘어웰 파트너스와 공동 개최하는 '한국 불확실의 시대 속 기업 거버넌스를 통한 신뢰 강화'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 피셔 CIO는 '일본 사례에서 배우는 한국 기업 내 주주 가치의 진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좌담회에 참여해 주주 참여활동이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