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범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4기 위원회 체계를 맞이했다. 준감위 출범 당시 그룹 준법 경영 강화에 따라 역할 축소를 예상했던 목소리와 달리 준감위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룹 산하 7개 협약사 거버넌스 이슈까지 점검하면서 사실상 삼성그룹 거버넌스 컨트롤타워라는 평가도 나온다. theBoard는 삼성 준감위의 그간 성과를 진단하고 향후 역할을 전망해본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출범 때부터 논쟁적 조직이었다.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등장한 만큼 태생적으로 사법 리스크와 떼어놓고 보기 어려웠다. 독립 감시기구라는 평가와 함께 '재판 대응용 조직'이라는 의구심이 동시에 제기된 이유다.
6년이 지난 지금 준감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위원회는 1기와 2기, 3기를 거쳐 4기 체제에 들어섰고 협약 관계사도 늘었다. 활동 영역은 총수의 사법 리스크와 준법 경영에서 노동, 인권, 지배구조로 넓어졌다. 다만 조직의 존재감이 커진 만큼 앞으로는 '무엇을 다루느냐'보다 '무엇을 실제로 바꿨느냐' 역시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법 리스크 대응 조직에서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준감위의 가장 큰 성과는 역설적으로 '없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출범 당시만 해도 준감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일정 부분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축소되거나 존재감이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준감위는 4기까지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준감위가 삼성 내부에서 논의되는 의제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이다. 과거 삼성의 준법 이슈가 총수의 사법 리스크나 개별 사건 중심으로 소비됐다면, 지금은 노동·인권·지배구조 등 훨씬 넓은 범주의 의제로 확장됐다. 준감위가 모든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삼성 내부에서 관련 이슈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은 해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준감위는 단순히 사후 점검에 그치지 않았다. 준법지원인 회의, 최고경영진 간담회, 사외이사 간담회 등을 통해 계열사 내부 의사결정 구조와 접점을 넓혔다. 재계 관계자는 "준감위가 어느 순간부터 감시자라기보다 삼성 내부 의사결정의 한 축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권고기구의 구조적 한계
준감위의 한계도 명확하다. 가장 큰 제약은 법적 권한이다. 준감위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가 아니며 상법상 의사결정 기구도 아니다. 삼성 주요 계열사와의 협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외부 독립기구다. 따라서 준감위가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권고를 할 수는 있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은 각 계열사 이사회와 경영진에 있다.
이 구조는 준감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실효성 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외부 감시기구로서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권고가 실제 경영 판단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준감위가 강하게 의견을 내더라도 이를 수용할지는 결국 회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
<출처=삼성 준법감시위원회 2025년 연간 보고서>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준감위가 존재함으로써 어떤 리스크가 예방됐는지, 어떤 의사결정이 달라졌는지를 외부에서 명확히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준법 리스크 관리의 특성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 자체가 성과일 수 있지만, 이를 객관적인 지표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더 근본적인 지적도 있다. 준감위 위원장은 출범 이후 한국경제인협회 가입 찬반, 이재용 회장 사면 필요성, 등기이사 복귀 등 굵직한 사안마다 적극적으로 발언해왔다. 일각에서는 독립 감시기구 수장이 삼성의 주요 사안을 대외적으로 설명하고 정무적 해석까지 내놓으면서 '감시자'에서 '내부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협약사 중심 구조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룹 전체를 상대로 한 감시기구처럼 보이지만 실제 활동 범위는 협약을 맺은 계열사에 한정된다. 협약사 확대가 의미 있는 변화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아직 적용 범위의 한계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존 넘어 영향력 확대 과제
준감위는 꾸준히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으로부터 운영 지원을 받는 구조에서 독립성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첫 번째다. 준감위가 위원 구성이나 활동 방식, 권고 내용에서 삼성의 입장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실효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활동 범위가 노동, 인권, 지배구조까지 넓어진 만큼 각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회의를 열고 권고를 했다는 수준을 넘어 실제 제도 개선이나 의사결정 변화로 이어졌는지가 중요하다. 준감위가 다루는 의제가 많아질수록 이 질문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출범 초기에는 준법경영 시스템이 자리잡으면 자연 소멸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결국 준감위가 업무 목표를 각 계열사와 얼마나 효율적으로 협력해 달성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초기 준감위의 과제가 생존이었다면 4기 준감위의 과제는 영향력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