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그간 민주당에서 추진해 온 상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4일 오전 집무를 시작한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일환으로 상법 개정안 처리를 강조해 온 만큼 연중 관련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꾸준히 민주당발 상법 개정을 반대해 온 재계에서는 여전히 법안 개정 시도에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이정문 국회의원과 같은 당 의원 17명이 함께 기업 이사 충실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안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돼 국회 재표결에 부쳐졌지만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됐다. 재표결에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이정문 국회의원 등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현행 상법 조문으로는 이사로 하여금 기업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장케 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에서 마련됐다. 우리나라 법원은 회사와 주주는 법인격이 다르므로 회사를 기준으로 이사의 임무 위배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줄곧 견지해왔다. 우리나라 기업 이사에는 회사의 이익을 지켜야 할 충실 의무만 있을뿐, 주주 전체의 이익을 감안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과거 21대 국회에서도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명시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이용우 박주민 민주당 국회의원 등은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재계 측 반발 등에 가로막혀 국회 통과가 번번히 무산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올해 통과될 경우 처음 법안 마련 4년여 만에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다.
[이미지=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상법 개정안 내용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06년의 일이다. 피고인이 법정관리 중 기업을 차입매수 방식으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자산 양도가 이뤄진다면 이는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 내용에서 이사의 보호 대상 범위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다. 이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배정 사건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슈를 거치며 해당 이슈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과 지난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추진 과정을 거쳐 최근 빙그레 지주사 전환 시도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증자 시도를 둘러싸고도 유사 논쟁이 반복됐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충돌되는 기업 분할 및 합병, 자본거래 이슈 등에서 이사가 지배주주로 대표되는 회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과연 적법하느냐에 대한 논란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와 저가 합병, 편법 승계, 자사주 활용 가치이전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상충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업 이사로 하여금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조문과 판례 등을 통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장치가 없어 일반주주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으로 소위 '오너'가 있는 기업들이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변화를 실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일가가 이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는 단기 차익 등을 노리는 일반주주의 민사소송 증가, 이사의 책임 리스크 확대 등이 법안 이행의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상법 개정안 관련 취임 후 2~3주 안에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어 상법 개정안이 실제 이행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 관측이다. 시장에서는 올 하반기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상법 개정안 통과가 유력한 만큼 이사회 내에서도 스터디 클럽 등을 꾸리는 등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