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은 단순한 법조문 변경이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해묵은 과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제도적 응답이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균형을 맞추고자 이사회 등 지배구조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정부의 선언이기도 하다. 시장도 반응했다. 투자자의 시선은 상법개정이 일으킬 실질적 변화에 집중되고 있다. theBoard는 권한과 책임, 경영과 견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사회 패러다임의 전환 가능성을 짚어봤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외이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데도 사외이사의 의결과정이 '거수기'라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 원인이 이사회의 약한 독립성에 기인하는 만큼 명칭부터 독립성을 강조하는 한편 제도적 강화 장치도 마련하겠다는 목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이사회의 독립성과 책임, 역할을 강화하는 데 집중돼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된다. 여기에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안도 주요 내용으로 꼽힌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독립이사 제도 개편,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전자주총 의무화 등은 모두 '견제받는 이사회'를 표준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김 의원은 상법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다.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와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등에 참여해 새 정부의 증시 밸류업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김 의원은 기업과 사외이사들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도 이들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이사, 단순 외부 인사 아닌 실질 감시자 돼야"
상법 개정안의 내용을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하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강화 △감사위원·감사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 의결권 3% 제한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이다.
다만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이유로 3%룰이 법안에 최종 포함될지는 막판까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서도 핵심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다. 결국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이 강화된다. 뒷받침하는 안이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이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사외이사는 이사회 구성의 4분의 1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이를 3분의 1 이상 독립이사로 선임하도록 강화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라고 말했다.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닌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다.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도 독립이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미국 S&P500 상장사의 90% 이상이 독립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독립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재무 성과도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제도 도입의 당위성을 짚었다.
이사 선출 방식 개편도 병행된다. 김 의원은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들이 한 후보에 표를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실질적으로 독립성이 담보된 이사를 선출할 수 있다"며 "현재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집중투표제가 도입돼 있지만,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집중투표제를 둘러싼 반발에 대해서는 "지배주주가 원하는 인사로만 이사회를 구성하려는 배경이 깔려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제도인데 한국만 도입을 미루는 건 경영권 방어 논리"라고 덧붙였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해야…최대주주·특수관계인 3%룰 보완"
감사위원의 분리선출 단계적 확대와 3%룰도 상법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3%룰 조항은 야당과 기업계의 반대 속에 최종적으로 법안에서 빠질 수 있으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분리선출 감사위원의 수가 1명 이상이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2명 이상으로 확대된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3%룰을 적용하는 대상도 1명에서 전원으로 늘어난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이 대상을 넓혀 '지분 쪼개기' 등의 우회선임 방안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의원은 "감사위원회가 경영진을 감시하려면 외부 견제력이 강화돼야 한다"며 "형식적 선임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소수주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오너가 3% 가까이 갖고 있고, 아내나 자식이 각각 3%씩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나눠서 3% 이내로 여러 명을 만들어 우회하게 되면 분리 선출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편법을 차단하려면 이 같은 지분 쪼개기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상법 시장 반응 긍정적…기업 우려 알지만 변화해야"
코스피 지수로만 보면 상법 개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김 의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증권주와 지주사의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편법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실제로 지주사의 주가가 오르는 현상은 상법 개정이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기업들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경영권 제한과 이사회에 대한 잇따른 소송 부담감 등이 이유다.
김 의원은 기업의 우려를 알고 있지만 변화해야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작년에 상법 개정안에 반대 성명을 낸 14개 기업을 보면 대부분 물적분할이나 쪼개기 상장 등의 전력이 있는 곳들"이라며 "시장과 기업의 입장이 괴리돼 있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의 사외이사 위축 우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 의원은 "사외이사들이 주주들로부터 피소당하지 않을까,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그런 결정을 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정당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경영하면 오히려 기업에 유익하다"고 짚었다.
정보공개 강화를 위한 장치로는 전자주총 의무화가 포함돼 있다. 김 의원은 "전자주총이 도입되면 회의 방식, 의결권 행사, 기술적 장애 등의 내용을 전자적으로 기록하고 공개하게 되므로, 의사결정 과정이 보다 투명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쟁 발생 시 이를 근거로 활용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이사회 논의 구조도 정비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상법개정(국장 관리)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주요 경제단체, 주요 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가져왔다"며 "오래 추진한 개정안인 만큼 시장과 기업의 의견도 충분히 숙성됐다고 본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