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신설되며 이사회 안건에 대한 법률 검토 및 외부 자문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사회 안건도 안건을 선택하고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대안들은 왜 배제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사회 선택이 주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한 '주주 영향 검토보고서(가칭)'를 만들고 공시해야 합니다."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정도진
LG 독립이사(
사진)는 28일 더벨과 인터뷰에서 개정 상법 시행으로 이사회가 변화할 방향성에 대해 짚으며 이같이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사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로 "이사회 안건을 놓고 주주 권한 침해에 대한 법률 검토를 기업과 독립이사 모두 요구하는 경향성이 짙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그는 이사회에서 결론 자체만 공개하기 보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토론 과정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충실 의무에서 더 나아가 주주영향 보고서까지 검토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부 자문 범위·감사위원 요건 명문화"
지난해 7월 개정 상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기업은 변화한 정책에 맞춰 이사회를 재편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내용은 지난해 7월 바로 시행됐다. 상장사 감사위원 선·해임 시 적용되는 3% 룰(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를 2인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은 올해 7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사회의 변화 흐름 속에 정 교수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는 게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 외부 자문과 법률 검토를 받는다고 해서 주주 보호를 완벽히 수행했다고 할 순 없으나 기업과 이사회가 어느 정도 노력을 했는지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또한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나가는 만큼 외부 자문을 받을 안건을 어디까지 상정할지 이사회 규정에 명문화할 것을 조언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시행되는 감사위원 선·해임 시 3% 룰 적용,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 확대 등 감사위원회와 관련해 이사회 규정에 감사위원 요건을 엄격히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데다 별도로 선임하는 감사위원 수가 기존 1인에서 2인으로 늘면서 감사위원 선임을 통한 기업 경영권 분쟁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정 교수는 이에 대응책의 하나로 이사회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감사위원의 요건을 보다 강하게 규정하는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상법 개정 과정에서 감사위원 요건에 대한 논의가 빠졌던 만큼 이사회 자체적으로 재무·회계·감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갖춘 인원과 그 요건에 대해 명문화하라는 조언이다.
현행법상 대통령령으로 정한 회계·재무전문가 1인 이상이 감사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요건은 공인회계사, 회계·재무 석사 이상 학위 취득자 및 연구기관·대학 조교수 이상, 상장사 회계·재무 임원 등으로 각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 다만 이외에는 재무·회계·감사 전문가인지 의심되더라도 비교적 자유롭게 감사위원에 선임할 수 있다. 경영권 분쟁에 노출된 기업에게 감사위원 요건을 보다 엄격히 적용·명문화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이사회 감독기능은 시장에서, 주주소통 IR 필요"
정 교수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켄터키대학교(University of Kentucky)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 후 2007년부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재무·회계에 정통한 학계 인사로 평가받는다. 2019년
네이버를 시작으로 롯데하
이마트(2020~2024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2024~2026년) 등 재계 대표 기업의 독립이사를 맡았으며 현재는
LG에서 독립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학계와 재계를 넘나 들며 재무·회계·감사 전문성을 발휘 중인 그는 의사결정 투명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에 이사회 감독·감시 기능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가 신설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 교수는 이사회가 안건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하기 보다 다른 대안을 배제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를 정리한 주주 영향 검토보고서를 공시할 것을 제안했다.
기업 공시를 따라가다 보면 의사결정 결과와 그 이유를 간략히 한줄로 공시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만으로는 이사회 투명성을 뒷받침하기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기업의 투명한 이사회 공시를 시장 참여자들이 세세히 따져보며 시장 자율로 감시기능을 올리는 구조다.
정 교수는 "자본시장 투자자들이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정보를 얼마나 충실히 공시했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고 감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이사회 기능 강화가 곧 기업가치로 연결돼야 본래 법 취지를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사회가 기업설명회(IR)와 같은 소통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과거
네이버 독립이사 재직 시절 일화를 예로 들었다. 해외 기관투자자의 경우 이사회 의장이 직접 IR에 나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 교수가
네이버에서 독립이사로 재직할 때 의장이었던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대표가 소통 담당자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변 의장은 독립이사가 아닌 기타비상무이사였다. 다만 최근 들어 재계에서 독립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추세가 확대된 만큼 독립이사 의장의 주주소통 역할도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