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를 털어냈지만, 여전히 오너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기업은 상당수다. 이사회는 리스크를 방지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유일무이한 기구다. theBoard는 다양한 오너 리스크 속 각 기업 이사회의 현 주소를 짚어보고 향후 대안을 모색해본다.
한국앤컴퍼니는 당장 오너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은 최근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구속됐는데 조 회장이 그간 경영에 적극 참여해 온 만큼 그의 부재는 메우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조 회장과 합을 맞춰온 박종호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매개로 조 회장과 이어져 있는 박재완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5월 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조 회장은 2023년에도 구속 기소된 바 있지만 보석으로 풀려나 지금껏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재판부는 조 회장이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포함해 개인 차량을 회삿돈으로 구입·리스한 혐의 등 당국이 제기한 9개 혐의 중 8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조 회장 법정 구속에 따른 영향은 상당하다. 한국ESG기준원은 조 회장 혐의가 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 한국앤컴퍼니 ESG 등급을 B+에서 B로 한 단계 낮췄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그룹 오너의 사법 리스크는 경영에 불확실성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2023년 법정 구속된 탓에 그해 이사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7억원의 보수를 받아 세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조 회장은 그간 한국앤컴퍼니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한국앤컴퍼니 지분 42%를 가진 최대주주인 그는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로 경영을 주도했다. 작년 한해 조 회장의 이사회 참여율은 83%을 기록했으며 한국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인수 작업도 조 회장이 주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 회장 부재가 이사회 경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너 공백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너 부재 속 경영을 이어갈 인물은 박종호 대표다. 올 3월 신임 대표로 취임한 박 대표는 2011년 한국타이어 기획재정부문장으로 입사해 전략기획과 경영기획, 재무회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2022년 오너가 분쟁 이후에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다. 그룹 오너가 경영을 주도하는 경우 전문경영인을 기용해 단독 경영 부담을 덜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박 대표가 조 회장 경영 파트너로 활동하는 셈이다.
박 대표는 현재 한국앤컴퍼니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경영진이기도 하다. 이사회는 각종 경영과 재무 등에 관한 주요 경영 전반 사항을 다루는데 조 회장 부재 속 이사회 안건 부의 역할은 박 대표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 운영규정에 따르면 정기 이사회는 분기에 한 번 개최하되 수시 이사회는 필요시 소집할 수 있다. 한국앤컴퍼니 이사회는 올 상반기 정기 이사회 2번, 수시 이사회 3번 총 5번 개최했다.
다만 박 대표가 조 회장 어느 정도까지 독자 판단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박 대표는 조 회장과 함께 경영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조 회장이 구속되면서 위원회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경영위 의결은 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로 이뤄진다. 박 대표 혼자 위원회를 운영할 수 없는 셈이다. 경영위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위임 안건에 대한 심의와 의결을 담당하는 기구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경기도 판교 본사 테크노플렉스(Technoplex) 외관
이사회에는 조 회장과 가까운 이사가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 기재부 장관 등을 역임한 박 사외이사는 2022년 초대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에 선임돼 올해로 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해 온 박 사외이사는 이 전 대통령 사위인 조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과거 주총에선 일부 주주가 박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박 사외이사는 현 사외이사 중 과거 조 회장이 그의 형제들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을 당시 해당 분쟁의 처음과 끝을 지켜본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와 이호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 등 일부 사외이사의 경우 2023년 이사회에 등판, MBK파트너스의 주식 공개매수에 따른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경영권 분쟁 시 이사회 멤버 지원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초까지 한국앤컴퍼니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국 현지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안과 모빌리티 사업 추진과 그룹 차원의 AI·디지털 전환 과제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혁신과 도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 구속 리스크가 당장 경영에 문제를 일으키진 않더라도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신사업 추진엔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