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동업자로 만나 벤처 창업 신화를 써내려 왔다. 두 사람 모두 큰 산을 하나씩 넘었다. 이 의장은 지난해 일본에 진출한 라인야후의 지배력을 잃을 위기에 있었으나 이사회 의석을 양보해 라인야후 지분 매각 위기를 넘겼다. 김 센터장은 올해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사법 리스크에서 한결 자유로웠다.
다만 인공지능(AI) 시대 진입을 앞둔 시기 두 사람의 행보는 갈렸다. 이 의장은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해 AI 전략을 지휘한다. 김 센터장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그룹 컨트롤 타워인 CA(Corporate Alignment)협의체 의장에서 물러났다. 카카오 공동체(그룹) 성장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역할만 유지한다.
가상자산 사업은 이 의장이 먼저 승부수를 띄웠다.
네이버는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통합 방안을 논의 중이다. 김 센터장은 카카오가 초기에 투자했던 두나무를
네이버에 내줘야 하는 처지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 제도화를 앞두고 빅딜 기회를 선점하지 못했다.
◇인터넷 시대는 네이버, 모바일 시대는 카카오가 주도 이 의장과 김 센터장은 서울대학교 86학번 동기이자 '정보기술(IT) 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SDS 입사 동기(1992년)다. 인터넷 시대 두 사람이 고민한 창업 아이템 달랐다. 이 의장은 검색 엔진, 김 의장은 게임에 꽂혔다.
이 의장은 1997년 삼성SDS 소사장(과장) 시절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1호 사내 벤처 '웹 글라이더'팀을 결성했다. 이 의장은 서비스명을 '
네이버(Naver)'로 정하고, 1999년
네이버컴이라는 독립 법인으로 분사했다.
네이버컴은 자본금 5억원으로 출발했다. 이 의장과 삼성SDS 동료들이 3억5000만원, 삼성SDS가 1억5000만원을 출자했다.
김 센터장은 삼성SDS 과장 시절 PC 통신 '유니텔' 기획·개발을 담당했다. 국내 통신 시장흐름이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걸 예감하고 온라인 게임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1998년 삼성SDS를 그만두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이듬해 국내 최초 온라인 게임 포털 '한게임'을 론칭했다.
2000년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한배를 탔다. 그해
네이버컴이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흡수합병했다. 검색 엔진 후발 주자인
네이버는 트래픽이, 이용자가 늘어난 한게임은 기술력이 필요했다. 이듬해 합병
네이버컴은 이해진, 김범수 공동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그해 사명도
네이버컴에서 NHN(Next Human Network)으로 바꿨다.
모바일 시대에는 김 센터장이 주도권을 쥐다. 2005년 NHN 대표이사에서 내려온 김 센터장은 2006년 아이위랩을 설립해 다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여간 히트작 없이 고전하다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이위랩은 그해 사명을 카카오로 바꿨다.
네이버도 2011년 '
네이버톡'을 출시했지만 국내는 카톡 독주 체제가 공고했다. 이 의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1년 일본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선보였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1위 모바일 메신저를 석권한 라인은 2016년 도쿄,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2019년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손을 잡았다. 라인과 야후재팬(인터넷 포털) 경영을 통합하기로 뜻을 모았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합작사(지분 각 50%)인 A홀딩스를 라인야후 최대주주로 만들었다.
김 센터장은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며 주식 시장에 우회 상장하는 전략을 택했다. 2014년 코스닥 상장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인터넷 포털)이 비상장사인 카카오를 흡수합병해 다음카카오가 탄생했다. 다음카카오는 합병 이듬해 사명을 카카오로 바꿨다. 김 센터장은 2022년까지 카카오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확장한 사업 영역은 달랐다. 이 의장은 커머스 영역에 집중했다. 2011년 서비스를 출범한
네이버쇼핑 외에 중고 거래 플랫폼 기업들을 차례로 사들였다. 개인 간 거래(C2C) 리셀 플랫폼 크림을 출시한 뒤 미국 중고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1조8878억), 스페인 C2C 중고 거래 플랫폼 왈라팝(9036억원)을 인수해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김 센터장은 콘텐츠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2016년 온라인 음원 서비스 '멜론' 운영사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영위하던 로엔엔터테인먼트(1조8776억원)를 인수하고, 2021년
카카오페이지(웹툰·웹소설 서비스)와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출범했다. 2023년에는
하이브와 공개매수 대항전 끝에 SM엔터 경영권을 손에 넣었다. 인수대금으로 1조3601억원을 투입했다. 카오픽코마(일본 만화·소설 플랫폼)와
카카오게임즈(게임)에서도 콘텐츠 부문 매출을 거둔다.
◇두나무 품는 이 의장, 빅딜 놓친 김 센터장 사업 확장 과정에서 위기도 맞았다.
네이버는 지난해 A홀딩스 지분 매각 리스크에 노출됐다. 일본 총무성이 보안 사고를 문제 삼아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 지도를 내렸다. 이 의장은
네이버의 라인야후 업무 위탁을 끝내고,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사내이사에서 제외해 라인야후 이사진을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했다. 이 의장이 2021년부터 수행하던 A홀딩스 대표이사는 유지한다.
김 센터장은 SM엔터 인수합병(M&A)이 발목을 잡았다. 시세 조종 혐의가 불거지며 김 센터장까지 수사망에 올랐다. 김 센터장은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해 경영쇄신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을 맡아 수습책을 마련했다. 지난달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결백을 입증했다. 검찰이 항소를 제기해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의장은 올 3월
네이버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복귀했다. 곧바로 이사회 의장으로도 선임됐다.
네이버 이사회는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이 의장의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의장은 연계 산업을 흡수하는 특유의 확장 전략도 내놨다.
네이버파이낸셜(결제 서비스)은 두나무와 통합 방안을 논의 중이다. 주식 교환 거래로 두나무를
네이버파이낸셜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안이 유력하다. 추후 송치형 두나무 이사회 의장이
네이버 주요 주주에 오르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거래 구조를 짜고 있다.
김 센터장은 지난 3월 CA협의체 의장과 협의체 산하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에서 사임했다. 건강을 돌보기 위해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제외한 직책을 내려놨다.
네이버와 두나무 통합 논의를 지켜보며 아쉬움을 삼켜야 하는 상황이다. 두나무 3대주주(10.59%)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투자금 회수를 저울질해야 한다.